◎“겨레의 정수리 짓누른 흉물제거 시원”/시민들 “역사적순간 동참” 더위도 잊어민족의 가슴에 박힌 쇠말뚝이 뽑혔다. 서울의 심장에 박힌 쇠말뚝이 뽑혔다. 웅장한 북악을 뒤로 쇠말뚝이 번쩍 창공에 들어올려진 순간 진정한 해방과 광복의 감격이 모든 이의 가슴에 벅차게 차올랐다.

광복 50년 상오 9시 20분, 일제가 우리 땅에 박은 가장 큰 말뚝인 구조선총독부 중앙돔 첨탑이 민족의 정전 경복궁 앞마당에 끌어내려지자 숨죽이며 지켜본 국민들은 한결같이 속시원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광복50주년 중앙경축식전 행사로 거행된 첨탑제거작업 이름은 「어둠걷우기」. 상오 9시10분께 주돈식 문체부장관이 총독부철거의 사유를 알리는 고유문을 낭독한 후 3백30톤급 대형 하이드로크레인이 이미 두 쪽으로 절단해 놓았던 첨탑 상부를 단번에 끌어내렸다. 순간 건물옥상과 광장에서는 일제의 치욕을 씻는듯 분수같은 폭죽과 섬광이 치솟아 올랐고 경축식 참석인사들과 시민등 5만여명의 환호와 박수가 광화문을 뒤덮었다.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일제수탈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로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느라 무더위도 잊었다. 현장근처에 오지 못한 시민들은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중앙에 설치된 초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철거순간을 지켜보았다. 시민들 중에 드문드문 보인 일본관광객들은 말이 없거나 감회어린 표정들이었다.

첨탑이 잘려나간 총독부 건물은 일제 군국주의의 오만함이 일순간에 꺾여진 듯 북악산 자락에 흉물스럽게 걸려있는 것 같았다.

일본군에 징용됐다 해방후 귀국했다는 고달수(72·강서구 화곡동)씨는 『구총독부건물을 지나갈 때마다 못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며 『살아 생전에 이 건물의 철거를 보게될 줄은 몰랐다』 며 감격해 했다.

임수진(23·여·서울대 대학원생)씨는『비록 식민세대는 아니지만 철거순간에는 뭔가 가슴이 찡해왔고 35년동안 일본에 억눌려 살아왔던 민족의식이 내게도 깊숙이 잠재해 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총독부 첨탑제거를 보기위해 방한했다는 일본인 후지이 세이지(등정성이·30·작가)씨는 『한국민이 과거 역사의 한부분에 불과한 총독부 첨탑제거에 이렇게 기뻐하고 환호할지는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높이 8.5m 총중량 35톤의 첨탑은 이날 상오 4.5m, 11.4톤의 아랫부분이 먼저 내려졌고 하오 7시께 하부가 철거됐다. 한민족의 정수리에 박혀 민족의 정기를 자른 첨탑은 8월말까지 박물관광장에 그대로 놓여있다 오는 9월 독립기념관에 옮겨져 오욕의 역사를 영원히 후손에 증언하게 된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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