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에 서일필도 못되는 한낱 해프닝이었다.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계좌설」 파문에 대한 검찰의 조사결과다.검찰은 거액비실명계좌설과 관련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등 11명을 조사한데 이어 첫 발설자로 알려진 이창수씨의 진술을 최종적으로 들음으로써 비실명계좌의 실체가 전혀 없이 뜬소문이 와전된 단순한 소동으로 결론짓고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시중의 허망한 뜬소문 하나에 온나라가 그동안 그렇게 들썩거렸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기가 찬다. 요란하던 설은 바람빠진 풍선이 되어버리고 단 한사람도 처벌된 사람은 없고 나라 전체가 망신만 당했다. 우리 사회가 지닌 의식수준,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기 쉬운 사리판단 능력의 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다고 해서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시정의 하찮은 소문조차 가리지 못한 전총무처장관 서씨에게 있다. 장관이라는 고위공직자, 그것도 권력의 실세라는 사람이 『시중의 루머를 전했을 뿐』이라고 나중에 해명한대로 시정잡배들이 옮기는 소문인줄 알면서 확인도 않고 무게를 실어 발설했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가·차명계좌의 실명화를 정부내 요로에 문의한 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그의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민들이 그의 발언을 루머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믿게 된 것은 『어떤 사람이 가·차명계좌의 실명화를 물어왔다』는 구체적인 대목이었다. 서씨는 장관 자리를 내놓은 것만으로는 책임이 끝날 수 없다. 도덕적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한 개인만의 책임이기에는 파장이 너무 컸다. 서씨가 발설할 당시는 일개 사인의 자격이 아니라 현직장관의 자격이었다. 장관의 발언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발언이었더라도 장관의 발언인 이상 정부의 공신력과 무관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라망신까지 했으니 집권층 또한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이번 소동에는 언론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장관의 발언이라 신뢰성을 의심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조금만 신중했으면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데도 개연성만 가지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국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철저한 검증없는 맹신주의와 선정주의적 보도 태도는 엄히 질책받아야 마땅하다.
지난 시대의 부패한 정치역사가 낳은 뿌리깊은 불신풍조에다 브로커에 놀아난 경솔한 고위 공직자와 이 공직자에 동조한 언론이 합세해 이번 해프닝이 빚어졌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부끄러울 정도의 이 사회 사리분별능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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