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부터 통일문제 종사한 대남전략가/달변·기억력 뛰어나 “인간계산기” 불려북한에는 이론과 실무를 겸한 대남전략가가 여러명 있다. 그 중에서 전금철(61)은 통일문제 및 대화분야의 최고급 실무책임자로 손꼽힌다. 그는 지난 6월과 7월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남북 쌀회담때 북측대표로 나와 이목을 끌었는데 10일로 예정됐던 3차회의때 또다시 모습을 나타낼줄 알았으나 쌀수송선 삼선비너스호 억류사태로 회담은 무기연기상태다.
전금철이 처음 대남문제에 나선 것은 4·19 후인 61년부터다. 한국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북한이 통일공세를 적극적으로 취하기 위해 조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일원이었다. 72년에는 남북조절위 북측대변인으로 서울회담에 오가는등 30여년을 통일문제에만 종사해왔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한때 남북국회회담 대표를 지낸 그는 현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고문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조선반핵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남북고위급회담 화해공동위원회 위원장등을 맡고 있다.
미주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기자들에게 단골손님처럼 인터뷰 대상이 되는 선전통이기도 한 그는 달변에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술자리에서는 호탕한 일면을 보인다고 한다. 「인간계산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1934년 함경북도 웅기에서 태어난 그는 김일성대학 법학부를 나왔다. 60년초 재일교포 북송때에는 원산과 일본 니가타항을 오가며 적십자사중앙위원회 「일꾼」으로 나서기도 했다.
89년 임수경양 방북때 그는 『만약 남북한간에 대화가 지속되지 않고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호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92년 연형묵 총리 해임후부터 약2년여 공식모임에 나타나지 않다가 지난 3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평화통일일꾼」이라고 말하는 그는 소아과 의사인 부인과 2남1녀를 두고있다. 남북회담때 비교적 억지를 덜쓰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민병용·통일문제연구소연구위원>민병용·통일문제연구소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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