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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고싶지 않은곳(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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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고싶지 않은곳(장명수 칼럼)

입력
1995.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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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가 쌀을 싣고 가면 북한 동포들이 꽃다발을 들고 환영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당국의 태도는 갈수록 해괴해지고 있다. 6월25일 첫 쌀을 싣고 나진항으로 갔던 씨 아펙스호에 강제로 인공기를 달게 했던 그들은 지난 1일 15번째 쌀을 싣고 청진항에 입항한 비너스호의 선원이 항구 사진을 찍어 「정탐·도발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배와 선원 21명을 억류한채 돌려 보내지 않고 있다.북한은 세계가 다 아는 「예측 불능의 나라」다. 세계에 통용되는 상식이 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동포들이 보내주는 구호미를 싣고 온 선원을 억류하다니, 그 어떤 야만국이 그런 짓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북한의 야만행위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한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일주일이나 쉬쉬하면서 10일로 예정된 3차 회담을 준비하다가 북한이 회담을 거부하자 9일에야 할수없이 억류사실을 발표했다. 정부는 2일 하오 해운회사를 통해 사진촬영 시비를 보고 받고, 수차례 통신접촉을 시도했으나, 배와 선원들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가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던 쌀 15만톤중 지금까지 전달된 것은 절반인 7만5천톤인데, 정부가 나머지 쌀 제공을 일단 중단하기로 한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쌀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재점검하고,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정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기필코 쌀 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쉬쉬하는 비밀주의가 북측의 「행패」에 말려들어가게 된 큰 원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떳떳한 일을 하면서 어딘지 수세에 몰려 국민의 눈치를 보고, 일이 꼬일때마다 쉬쉬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는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이 언제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르는 특수한 집단임을 감안할때, 항구내에서의 사진촬영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명문화된 사전합의가 있었어야 한다.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이나 이번 트집이나 다 사전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데서 빚어진 불상사다. 중요하고 큰 일일수록 흥분하지 않고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을 겪고 온 씨 아펙스호 선원들은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억류까지 됐던 비너스호 선원들은 더 치를 떨것이다. 남한 동포들이 이런 기분을 갖게 된다면 정부가 아무리 원해도 더 이상 쌀을 보내기가 어려워 진다는 사실을 북한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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