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자라고 있는 보리밭에 소가 뛰어들어 보리싹을 뜯어 먹고 있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발견한 보리밭주인이 뛰어가 보니 이미 많은 면적을 망쳐 놓았다.크게 상심한 보리밭주인은 이웃의 소임자를 찾아가 배상을 요구했다. 소임자는 즉시 보리밭에 가서 피해정도를 살펴본 다음 보리밭주인이 요구한 대로 가을에 물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뒤에 소임자는 변상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소가 뜯어먹은 보리싹이 다시 자라서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보리밭주인은 관에 고소를 했다. 이 사건을 접수한 사람은 두 사람을 불러 소임자는 앉게 하고 보리밭주인은 서라 해놓고 달리기시합을 시켰다. 앉은 자세로 뛰는 소임자는 힘껏 뛰었으나 서서 뛰는 보리밭주인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소임자가 시합이 불공평하다고 항의하자 담당관은 그에게 반문했다. 『그러면 소에게 뜯어 먹힌 보리싹이 자라서 뜯어 먹히지 않은 보리와 똑같이 수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에 말이 막힌 소임자는 할 수 없이 배상을 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고려때 문신 이보림이 지방의 수령으로 있을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참으로 명쾌한 판결이다.
5·18에 대한 고소·고발을 접수한지 8개월만인 지난달 18일에 검찰이 발표한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은 어딘가 법정신이 결여된 것같은 느낌이 짙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군사쿠데타 성공 밑에 놓은 것이 그렇다. 이것은 이보림과는 정반대로 피해자는 앉아서 뛰게 하고 가해자는 서서 뛰게 하는 경기같다. 따라서 그런 결정은 인명경시를 법에서 공인해 주는 것처럼 보여 심히 우려가 된다. 어떤 의미로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인명을 얼마든지 살상해도 된다는 하나의 효시를 후세에 남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법이 법다운 권능을 갖지 못하면 그 위에 민심이라는 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로 말미암아 8월의 폭염보다도 더 뜨거운 계절이 우리 앞에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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