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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반세기­자신감과 숙제/박상섭(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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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반세기­자신감과 숙제/박상섭(한국논단)

입력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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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반세기를 맞는 우리 사회는 최근 몇년간 유달리 잦았던 대형사고와 사건들을 겪으면서 상당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 경제발전, 사회적 성장 및 정치민주화 등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가 이룩해 놓은 바가 결코 작지 않은데도 이러한 업적에 대해 스스로 자부하고 경하할 틈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 사고와 사건들이 하나같이 급속성장을 계속해 온 우리 사회 이면의 맹점을 드러내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그러한 사건들은 물론 당연히 없었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동안 이룩해 놓은 업적들이 전혀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나은 새로운 반세기를 위해 지난 반세기를 반성하는 일이지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 그 반세기를 부인하는 일은 아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번 50번째 광복절을 계기로 지난 50년간 우리가 이룩해 놓은 일과 부족했던 점의 대차대조표를 쓰는 것으로 과거를 묶어 매듭지으면서 앞을 내다보는 슬기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약간의 과장이 허용된다면 우리는 서양인들이 다섯 세기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의 작업을 그 십분의 일인 반세기만에 이룩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시간적으로 고도로 압축된 발전과 성장 때문에 당연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한 문제를 예견해서 성장과 발전을 일부러 늦춘 예는 아직 없었다. 2차대전후 후진국의 발전문제가 여러 모로 토의되었으나 실제로 그러한 일을 이룬 나라는 우리 외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음에 대해 우리는 자부할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은 주지되듯이 근대사회의 출현과 그에 따른 각종 변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이때의 변화는 서양인들에 있어서는 특정결과에 대한 이론적 해석의 결과였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요약되는 그러한 변화를 육안으로 목도하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역사상 그 유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드문 일이었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급속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우리는 장기간의 역사를 갖는 단일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광복이후의 분단이 주었던 긴장감,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그 발전을 바탕으로 하는 추가적인 선진화작업을 방해하는, 따라서 해결해야만 할 숙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동안의 성장과 발전은 눈부셨지만 우리 자신의 설계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외양의 물량적 발전은 이룩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의 원동력이었던 문화적 전통은 상당히 파괴되었다. 그 결과는 발전방향과 속도를 독자적으로 조절하고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반추할 수 있는 가치관과 규범적 기준의 상실이었다. 마치 사회 전체는 조종간과 제동장치도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이룩한 발전에 대한 자부심은 이제 발전의 속도보다 방향과 목적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광복이 통일을 통해 달성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지난 광복 반세기는 분단 반세기였고 그런 의미에서 반세기의 광복은 반쪽의 광복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한이 깃들인 이 분단의 극복은 대단히 시급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속도와 방향과 목적이 무시된 채 통일문제가 다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업적에 대한 자부심은 통일의 문제를 더욱 성숙된 자세에서 다룰 수 있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 설계와 시공이 모두 부실하여 통일이 삼풍백화점처럼 될 것을 바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통일과정에서 어떤 강제력의 개입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점의 현실적 가능성 여부를 잠시 제쳐놓고 생각할 때 그러한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남북한 사회가 각자의 방식대로 성숙된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그 발전은 남북한사회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할 때 달성된다. 북한이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광복 반세기를 맞는 현시점에서 분명히 그러한 발전에 대한 자신감과 확실한 전망을 갖고 있다.

광복반세기를 맞는 우리는 이제 자신감과 숙제를 동시에 부여받고 있다. 그 숙제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발전 그 자체 안에서 자라난 것이다. 따라서 그 숙제는 바로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서만 풀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자신감은 오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는 겸허함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민족적 자존심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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