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비난 자제 북과 실무교섭/쌀지원 둘러싼 북내부 갈등 우려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쌀수송선 삼선비너스호를 억류한 사건은 그동안 아슬하게 이어져온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일단 신중한 자세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이 소위 「정탐행위」를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점을 강변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의 전반을 경색국면으로 끌고가지않게끔 조심스럽게 실무적 차원에서의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9일 낮 30대그룹 회장단과의 오찬석상에서 이와 관련, 『남북문제는 서두르지않고 인내를 가지고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부는 고강도의 대북비난보다는 쌀지원을 지난번 인공기사건의 경우와 같이 잠정적으로 쌀지원을 중단하고 북한과의 교섭을 벌이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북한의 도발」이라는 극단적인 시각보다는 「쌀지원의 과정에서 빚어진 절차상 문제」로 간주하고 남북간의 합의내용대로 양측 대표의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키로 한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않았지만 북한이 쌀회담의 합의를 정면으로 뒤엎겠다는 의사가 확인되지않은 이상 우선은 남북간의 합의내용에 따른 절차를 취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냉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대북쌀지원에 관해 국내의 여론이 분분한 마당에 우성호의 반환문제와 안승운 목사사건 등으로 인해 북한의 「성의」가 의심스럽던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애당초 정부가 쌀지원을 결정한 것도 공식적인 대북채널을 통해 막혔던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의도였고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생각했었다. 따라서 10일부터 중국의 베이징(북경)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3차 쌀회담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거꾸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지않을 경우 무엇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경축사 또는 담화문의 형식으로 밝히게 될 김대통령의 대북제의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부인해왔지만 8·15를 계기로 남북 민족대화합을 위한 「획기적인 제안」을 구상해왔던게 사실이다. 이번 사건이 있기전에도 3차 쌀회담의 성과가 미진할 경우 대북제의의 수준을 낮춰야한다는 공감대가 정부내에 형성돼 있었는데 여건은 더욱 안좋아진 셈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와 관련, 『8·15 경축사에 담을 대북메시지는 구체적인 제안보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을 재강조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 따른 국민적 시각을 감안할때 그조차도 다소 강한 쪽으로 수정해야될 것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심 우려하고 있는 대목은 이번 사건이 쌀지원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노선갈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다. 우리에게서 쌀지원을 받는 것에 불만을 품어온 강경세력이 삼선비너스호를 억류해놓고 「정탐행위」를 물고늘어질 경우 남북 양측 모두가 해결의 명분을 찾기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내부적으로 사건해결이 장기화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최악의 국면으로 빠질 것에도 대비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도 『북한내부에서 지난번 인공기사건을 만회해보려고 이번 사건을 몰고가려는 조짐도 보인다』면서 『북한도 사건을 공식화한 이상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려울 것같다』고 말했다.<신재민 기자>신재민>
◎비너스호 소속 삼선해운 표정/대책마련 비상체제 돌입/“이씨 기념촬영 취미… 「정탐」은 억지”
북한이 청진항 촬영을 빌미로 쌀 수송선 삼선비너스호를 억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6층의 삼선해운(대표 김철산)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삼선해운 직원들은 일등항해사인 이양천(34·서울 관악구 봉천9동 관악아파트 6동 306호)씨가 계획적으로 정탐하기위해 청진항을 촬영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한결같이 『이씨가 누구를 위해 정탐행위를 했겠느냐』며 『대단한 시설도 아닌 청진항을 기념촬영한 것을 가지고 북측이 공연히 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9천3백68톤급인 삼선비너스호(선장 장병익)는 지난달 31일 상오 10시15분 쌀 5천톤을 싣고 포항항을 떠나 28시간여 후인 1일 하오 3시께 청진항에 도착, 하역작업에 들어갔다. 비너스호는 이 사실을 삼선해운의 싱가포르 대리점인 데이 시핑사를 통해 본사에 알려왔다.
삼선해운은 그러나 싱가포르 대리점과 통일원을 통해 비너스호와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2일부터 북측이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원 21명이 탄 비너스호는 당초 6일까지 하역을 마치고 7일 하오께 포항으로 귀항할 예정이었다.
○…사진촬영을 했다는 이씨는 자신이 승선했던 배를 옮길 때마다 기념으로 자신이 타던 배를 촬영해 보관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조은아(28)씨는 이씨가 이번 항해 후 배를 옮길 것이며 10여년동안 배를 옮길 때마다 찍어 모아온 사진이 수십장에 이른다며 『남편은 배를 옮기기 전이므로 기념촬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남2녀를둔 이씨는 86년 목포해양대 항해과를 나와 3항사로 선원생활을 시작했고 이번 항해가 끝나면 다른 배로 옮길 예정이었다.
○…(주)삼선이 89년 서진해운을 인수해 설립한 삼선해운은 국내·외 해운과 어업등을 통해 해외 50개 연계망을 갖췄고, 지난해 매출액 1천6백17억원을 기록, 외항해운업체 순위 9위에 오르는등 대형 해운사로 부상했다. 삼선해운은 지난달에도 삼선바로우 삼선배너 삼선챌린저 삼선루비등 4척의 배로 총 3만3천톤의 쌀을 북한에 운송한 바 있다.<박정규·김경화 기자>박정규·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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