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년. 세월은 유수같은데 오직 인간만이 그 간단없는 흐름에 줄을 그어 놓고 집착하여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하지 말자. 적어도 민주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광복 50년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살피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의 이정표다. 문민화에 이어 바로 이 광복 50주년에 4대지방선거가 실시됨으로써 민주주의로의 기나긴 이행이 제도적으로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다.돌이켜 보면 지난 50년은 독재에 대한 피맺힌 투쟁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독재에 대해 분연히 저항했고 이들의 희생에 힘입어 오늘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세계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민주제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주의체제로의 이행과 더불어 민주화가 완결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권위주의의 자갈밭은 통과했지만 민주주의의 탄탄대로로 나아가려면 아직도 고르고 다져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관련된 문제는 크게 보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에 내장된 본질적인 문제들(TEXTUAL PROBLEMS)이다. 권위주의의 경험이 엄혹했던 만큼 거의 무비판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대의제와 다수결을 골간으로 하는 현실의 민주주의는 다른 제도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지 결코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라는 주어진 상황과 관련된 문제들(CONTEXTUAL PROBLEMS)이다. 여기에는 분단상황을 넘어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통일 그리고 우리를 휩싸고 있는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선진화는 이들 문제를 고루 고려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결정의 절차에 대한 합의이지 결정의 내용에 대한 합의는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민의 선호와 국가적 결정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결함을 고려할 때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시민들의 의식과 역할이다. 민주사회는 관용과 절제, 타협 그리고 반대의견에 대한 존중과 같은 시민의 자질이 전제 되어야 한다. 지역주의의 강화를 우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 통일이 민족대화해의 정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써 쟁취한 민주주의가 굳게 뿌리를 내리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우리의 시민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성숙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선진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광복 50주년의 이 뜻깊은 순간에 생각과 행동 모두에서 민주시민으로서 다시 태어날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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