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상징인 옛 총독부건물의 첨탑 절단작업이 어제 시작되면서 일주일 후면 광복 50주년의 날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했지만 우리의 부정적인 대일관 즉 「반일감정」은 달라진 것이 없다. 교육의 2대지주인 반공과 반일중 반공은 냉전체제 붕괴후 설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데 비해 반일만은 여전히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독매)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68%가 부정적인 대일관을 지니고 있다.일본이란 말만 들어도 신경을 곤두 세우고 경계심부터 가졌던 것이 반일의 얼굴이다. 반일은 어떠한 형태이든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강도가 강할 수록 평가를 받았다. 이기고 지는 것이 당연한 스포츠에서도 일본에만은 지는 것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명분을 중시하고 감정이 앞서다 보니 「청산해야 할 일본」, 「경계해야 할 일본」, 「배워야 할 일본」을 혼동하고 판단을 흐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반일의 실체를 파악하고 검증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이를 제의하는 것조차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일본에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콤플렉스까지 가질 이유는 없다. 일본문화에 대한 문호개방만 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됐는데도 아직도 이를 터부시 하고 있다.
한때 역사의 흐름이 뒤틀려 큰 고통을 당했지만 이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미래지향적으로 살려 나감으로써 민족의 긍지를 되찾을 수 있는데도 자괴감속에 스스로를 함몰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빨리 떨쳐버릴 수록 좋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반일의 참모습을 알고 감정을 다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일제시대를 구체적인 분석없이 감정적으로 원론만 거론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대일관은 전전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도 반박할 수 없는 반일의 논리를 세우지 못했고, 이 때문에 망언등으로 우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일본에 이용당한 일도 더러 있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의 일본이 일제와는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전전의 시각으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을 이해하려 해서는 지난날의 아쉬움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제부터는 반일도 사안에 따라 분별해 사용해야 한다. 경계하고 배우고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일관을 달리하는 것은 세계화시대를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극일이자 또 하나의 광복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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