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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변하고 있는가­남북학술회의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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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변하고 있는가­남북학술회의 결산

입력
1995.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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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 주관으로 분단후 처음 열린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북한이 2년여만에 학술회의에 응했다는 점도 그랬고 회의주제를 통일로 하자고 먼저 제의했다는 사실등은 여러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외의 관심을 모았던 이번 학술회의의 결산으로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참석자 3명의 의견을 들어본다.◎“북 공세아닌 공존논리 전환”/현실수용… 주체사상보다 민족주의 더 강조/최장집 고려대교수·정치학

남북정치학자간의 학술회의가 냉전의 해체와 새로운 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최초로 열린 것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동안 비정치적 수준에서의 남북교류는 종교·문화·체육분야에 한정되어 왔고 정치적인 의도를 갖는 교류의 경우 북한은 한국사회의 진보적 세력과만 대화 하기를 선호해 왔다.

이번 학술회의는 북한이 그동안의 정책에서 벗어나 한국사회의 이스태블리시먼트(기득권층)의 지식인들과도 대화를 가지려는 변화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북한의 태도변화는 과거의 통일전선 전략노선에서 벗어나 이제 한국사회의 이스태블리시먼트와 정면으로 대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학자들의 발표와 토론내용에서 필자는, 북한정권이 공식이데올로기와 현실사이에서, 그들이 주도하고자 했던 통일의 이상과 이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사이에서 갈등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공식언술과 수사의 수준에서 북한의 주장은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북한측은 내용상 깊숙이 현실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80년대말부터 이미 실질적으로는 평화공존을 전제로 삼는 「두개의 한국」이라는 현실주의적 정책을 취해 오고 있다. 통일에 대한 북한측의 강조는 신앙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그것은 강력한 남한으로부터 그들 체제를 인정받기 원하는 현실인정(공존)의 논리와 상호긴장하며 충돌하고 있었다.

북한측 학자들이 주체사상을 직접 언표하기 보다는 일반적 개념인 민족주의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려 했던 것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북한학자들은, 민족주의를 「우리식 사회주의」를 설명하는 핵심요소로 해석하려고도 하였다. 이는 현정권의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단결을 요구하는 논리이다. 즉 오늘날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민족주의에는 서로 다른 두가지가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민족통일의 논리로서의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체제유지의 논리로서의 민족주의인 것이다.

후자의 민족주의는 자주와 정체성, 그리고 내부의 단결을 호소하는 것인 만큼, 어쩔 수 없이 타집단에 대해 적대의식을 조장하게 된다. 이러한 이념적 정향은, 여러 민족과의 공존이 요구되는 새로운 탈냉전의 조건아래서 배타성을 강화하기 쉽다. 특히 남한에 대해서조차 적대의식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민족주의이념이 잘못 작동할 때 그것은 공존과 통일에 도움이 되기 어려운 비교적 근본주의를 통하여 체제의 폐쇄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번 학술회의에서 다시한번 북한의 통일정책은 남한의 통일정책과의 함수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북한학자들은 통일이 한쪽의 헤게모니아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언술을 극력 부정하였다. 즉, 북한의 공존논리는 이제 「통일의 방식」이자 「체제유지의 논리」라는 이중고리가 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조선」을 오랫동안 견지하던 과거의 공세적인 정책으로부터의 사실상의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필자가 이번 회의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한학자들 사이의 이념과 가치의 엄청난 간격에도 불구하고, 평화공존과 통일에 이르는 공감대를 넓혀나갈 수 있는 「가능의 영역」이었다. 그 「가능의 영역」을 확대, 현실화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독일인들이 오랫동안 강조하였던 이른바 「인내의 지혜」라는 말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일을 「가능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남겨진 셈이다.

◎“연방제통일 주장 강도 약화”/“미군철수 전제조건 아니다” 사석에선 동의/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분단 50년 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남북한 공동주최 학술회의장에 나타난 북한 사람들은 통일문제에 관한 한 적어도 그 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 이었다. 비록 판에 박은 듯한 공식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들의 논리는 정연했고 회의에 임하는 태도 역시 세련되고 비교적 깔끔했다. 따라서 그들로부터 북한의 변화를 감지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사석에서 이루어진 북한대표들과의 대화속에서 필자는 여러분야에 걸쳐 북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통일 3대원칙중 자주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북한은 「통일을 방해하는 조건」에서 미국은 외세라고 주장했다. 필자에게 이 말은 미국이 통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외세로 배격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북한대표들은 회의기간에 사적인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더이상 북한이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닌 것 같다는 남측대표들의 지적에 스스럼없이 동의했다.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북한은 공식적으로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했지만 전에 비한다면 그 주장의 강도가 많이 낮아졌다. 그리고 북한이 연방제 초기에는 국가연합방식을 가미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명확한 부정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연방제통일을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고 실제 내용은 점차 국가연합으로 기울어 갈 것 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회의에서 남북이 별 이견없이 합의한 것은 남북상호간에 중상·비방을 금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사석에서 북한의 남한대통령에 대한 비방문제를 거론하자 북한대표는 『요즘 고위급수준에서 그러한 비방이 없음을 주목해 달라. 그것은 언론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 뒤 점차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의 권력승계 인정에 대해서, 북한 대표들은 『김정일이 지난 30년간 후계자 수업을 쌓아왔고 인민들을 지도해 왔기 때문에 현재 그의 지도력이 행사 되는데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으며 승계일정은 그분만이 아실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늦어도 조선노동당 창설 50주년이 되는 오는 10월10일까지는 공식승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추측성 질문에 대해서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추측성 답변 이상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주체사상의 관념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들은 주체사상을 말할때 이 사상을 「인간중심의 사상」으로 규정하고 「사랑」을 강조했다. 「인간중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 되어 온 것 이었지만 「사랑」론은 새로운 것 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에서 주장하는 인덕정치, 광폭정치, 이민위천,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등이 모두 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사랑」론은 주체사상이 「배고픈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만든 극단적인 주관주의의 한 표현에 불과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북학자들은 비록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만남을 통해서 서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또 이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회의를 통해 남북학자들은 서로의 차이점을 줄이고 공유점을 늘리기 위해서는 역시 자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기자가 본 남북통일학술회의/“북,변화와 체제보존의 출구모색”/세계진출 어느 문열고 나갈까 고민하는듯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에서 북한은 아직 변화의 길을 찾는 과정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틀에 불과한 이번 회의를 토대로 북한이 「변했다」는 해석을 내리기에는 물론 성급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다른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리면서도 어느 문을 열고 나가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미로속의 실험대상과 같지 않나 싶다. 변화와 체제보존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출구를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측은 이번 회의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면서도 남측의 주장들을 주의깊게 경청했다. 이는 한 출구로 나갔을 때 어떤 결과가 기다릴 지를 예측해 보려는 노력으로 풀이됐다.

분명한 것은 북한은 앞서 문을 열고 나갔던 과거 사회주의 우방들의 선택을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두가지 목적중 한가지를 택하라면 북한은 주저없이 「체제보존」을 택할 것이고 「변화 」를 향한 모든 출구들을 꼭꼭 걸어잠가 버릴 것이다. 북한이 「변했다」는 성급한 판단이 위험한 것은 북한당국의 마음이 이처럼 유동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한 해외학자가 강조했듯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측에 가능한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며 『어느 문으로든지 일단 이쪽 세계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북측 참가자들은 개방의 방향문제를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했다. 한 참가자는 소련등 구동구권 국가들의 개방노선과 관련, 『그 나라들이 그 길로 가다 망했는데 우리보고 따르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중국식 개방모델에 관해서는 『중국도 이같은 모델을 「과도기적」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큰 나라로 많은 인구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는 역으로 중국식의 정경 2원체제를 북한이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말해주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북측 참가자들은 『우선 나라와 민족을 튼튼히 한 다음 모두 함께 사는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는 「체제보존이후 개방」의 시차적 순서만을 되풀이 강조했다. 이는 「개방이 곧 체제보존」이라는 우리측의 관점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 단계에서 남북한 정부간의 통일방안이 접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북측은 오는9월, 또는 10월중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후 15년만에 손질된 통일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새 통일방안이 기존의 방안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북측 통일방안의 목적이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형태로 통일을 완성, 체제를 보존하자는 것이다. 남북연합을 골자로 하는 남측의 한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방안은 제도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돼 불신이 대단했다.

따라서 남측에서의 성급한 통일논의 제의는 도리어 북측의 변화움직임 전반을 움츠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완성된 통일국가의 형태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여지를 남겨놓은 채 그 실천방안에 대한 의견을 접근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같다. 이와 관련, 남측의 진보적 비판세력이 반드시 북측에 대한 동조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게 된 것은 이번 학술회의의 여러 수확들중의 하나였다. 북측이 환영했던 남측의 한 참가자가 『북한을 개방시키는 것은 남한의 몫』이라는 주장을 펴자 북측 참가자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같은 충격이 거듭되면 북한 당국이 대남정책을 펴는데 있어 남측 상대역을 고르는데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유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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