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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만/강봉학(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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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만/강봉학(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5.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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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 온지 벌써 2년도 훨씬 넘었다.마침 오늘은 등기소에 가서 아파트 등기를 마치고 돌아와 「후」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지난 세월의 고난이 생각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여러가지 사연들도 많았지만 집을 분양받고도 돈이 없어 방황하던 때가 제일 어려웠다.

1992년 12월12일 한국에 온 나는 93년 12월15일에 정부에서 마련해준 집을 분양받았다.

집값은 9천9백만원에 절반도 넘는 금액이 모자랐다. 건설회사측에서 해주는 융자말고도 4천만원이 모자랐다. 중도금을 내야겠는데 돈은 없고 건설회사측에서 오는 독촉장만 쌓여갔다.

아무도 없는 이땅에서 내가 무슨방법으로 4천만원을 1년7개월만에 만든단 말인가. 그냥 북에 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런저런 궁리끝에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떤 한 사람에게 부탁을 하였는데 해주겠다고 하던 사람이 한달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벌써 두번째 중도금 날짜를 넘긴지도 한달이 되었다.

정말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내가 돈때문에 이러한 꼴이 됐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속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인간적인 손길이, 채찍으로 일으켜 세워주는 손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손길은 다름아닌 남한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보내준 사랑의 편지였다.

한국에 와서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그때 서로 편지를 주고 받고 하였는데, 그 어려운때 편지가 쏟아지듯 배달되는 것이었다.

『아저씨 힘 내세요』

『아저씨 부모형제들이 고향에서 아저씨 삶을 지켜볼거예요』

『아저씨 아저씨가 넘어지지 않도록 청주의 우리모두는 기도할거예요. 아저씨 동생으로 말할게요』

『남한테 받지만 말고 베푸는 사람이 되세요』

한장 두장 편지를 읽어가는 동안 흘러내린 눈물로 편지종이도 젖어들었다.

자책감과 부끄러움도 함께 흘러내렸다. 그래 일어서자! 내가 넘어져서 이러면 얼마나 너희들이 나를 비웃겠는가, 또 두고온 모든분들께 더 큰 죄악이 아니겠는가?

6·25때 월남한 분들은 박수 한번 받지 않고 정착금 한푼 받지 않았어도 다 혼자서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아가시는데 하고 생각하니 4개국 감방살이를 하며 수많은 나라 국경 철조망을 뚫고 이땅에 온 내가 너무 한심했다.

『나 죽어도 해내고 말리라』

단 한가지 생각으로 두주먹을 꽉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호텔과 음식점에서 일하고, 낮에는 강연하고 밤에 일하는 날도 많았다.

오직 버스와 전철만 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는 근검절약생활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은 한푼도 안쓰고 강연료도 꼬박꼬박 모았다.

정말 땀흘리고 눈물흘리며 뛰어다니다 보니 건강이 나빠져 경희의료원으로 대전성모병원으로 중환자실까지 실려갔다. 그러나 1995년 7월12일 드디어 내손으로 1년7개월만에 그 나머지 돈을 다내고 입주를 하게 되었다.

강서구 염창동 한강옆에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삼성한마음아파트의 넓은 집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청주의 소영이, 원주의 미영이, 수원의 오연이등 한국의 수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뜨거운 격려가 있었음을 다시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다른분들의 진심어린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고마운 그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꼭 간직하고 그 고마움을 길이 전하기위해 그 편지를 책으로 꾸미고 싶다. 이제 출판사만 정하면 며칠내에 될 것같다.

이제는 집을 장만했으니 다음은 함경도 음식 전문요리사인 나의 희망대로 식당을 개업할 꿈에 부풀어 있다. 이것도 물론 내힘으로 할테다. 그리고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나부터 똑바로 살고 남한 사람들의 세금으로 정착금을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겠다.

◇약력

▲1960년 함경남도 신포시 출생(35세) ▲함경남도 안전국 지도원 ▲재러시아 임업대표부 요리사 ▲92년 12월12일 귀순 ▲경희 호텔경영 전문대학 조리과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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