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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사상 첫 남북 심포지엄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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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사상 첫 남북 심포지엄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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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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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겨레 손으로 이룬 모임 감격”/이견불구 참가자 모두 진지한 대화 큰의미분단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에 참석한 26명의 학자들은 모두 감격에 휩싸여 있었다. 조국의 통일문제를 토론하는 역사적인 학술회의를 우리 겨레의 손으로 성사시켰다는 데서 오는 자부심 역시 회의장을 지배했다.

그러했기에 조심스런 태도가 남과 북 모두에 역력했다. 이 회의를 끝까지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참석자들로 하여금 각자의 의견은 떳떳이 밝히되 상대방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도록 자제시킨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술회의는 이른바 「2개궤도 접근법」을 자연스럽게 채택하는 결과를 낳았다. 「2개궤도 접근법」이란 협상심리학에서 나온 용어인데 공개적인 협상의 자리인 제1궤도에서는 상대방의 체면을 손상시키거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언동을 자제하고 그 대신에 비공식 자리인 제2궤도에서는 속마음을 털어놓은채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발언 내용들 가운데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공식회의에서는 반박하지 않고 「의도적인 침묵」을 유지하다가 중간중간의 커피브레이크나 식사시간에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보다 명백한 해명을 듣기도 한 것이 바로 「2개궤도 접근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접근법은 확실히 생산적이었다. 4차례에 걸친 공식회의를 화합의 웃음속에 무사히 마치게 하면서도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게 함과 아울러 각자의 의식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게 해주었다.

이번 회의는 당국자들 사이의 회의가 아니고 학자들 사이의 회의였는데도 남과 북 사이에 인식과 처방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차이는 상징적으로 이번 회의의 공식명칭에 압축됐다.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라는 공식 명칭에 「우리」를 나타내는 이름, 예컨대 「한국」이라든가 「조선」이라든가 또는 「코리아」라는 이름이 전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남과 북이 자신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 하나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핏줄과 언어가 똑같은 단일 민족임을 내세우면서도 그래서 하루빨리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남과 북의 「우리」를 묶어 부르는 이름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현실, 이것이 분단 50년의 한반도의 현실임이 새삼 확인됐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남과 북이 차이와 간격을 좁히고 공통의 접점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결의가 한반도 전체에 확산되어 하나의 강력한 구심점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면 우리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가 무책임한 환상은 아닐 것이다. 어느 한 주제발표자가 역설했듯이 오늘날 펼쳐지는 국제정치는 한반도에서도 구시대적인 냉전적 대결구도가 붕괴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답답하게는 보일지라도 남과 북은 그러한 국제정치의 요구에 서서히 부응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겨레 전체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겨레 모두에게 요청되는 것은 「창조적인 새로운 사고」라는 어느 한 주제발표자의 주장은 따라서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참석자 전원이 자리를 함께 한 만찬장에서 모두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 합창할때는 남과 북의 차이가 없었다.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회의장을 떠났다.

◎백영철 건국대 교수·정치학/“화해와 협력의 가능성 확인”/각분야 민간교류 확대가 통일지름길 실감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는 해방 50돌을 맞이한 시점에서 개최되었고 특히 남북학자들이 그동안 제3국에서 열리는 회의에 초청받아 함께 참석한 적은 간혹 있었으나 주도적으로 회의를 계획하고 성사시킨 것은 분단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번 학술회의는 고착된 분단상태를 극복하고 통일을 추구함에 있어 남북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에 나타난 통일의 기본원칙과 이를 토대로 구체화한 남북한간의 기본합의서를 평가하고 나아가 탈냉전의 조건에서 새로운 통일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참석자들은 회의에서 남북한간의 통일방안에 대한 공통점과 상이점, 그리고 이와 관련한 학자들간의 상이한 입장과 시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북측 참석자들은 북한의 공식적 입장인 「일민족 두제도 두정부 한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고려연방제안을 적극 주장했다. 남측의 참석자들은 일방적으로 현정부의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 민족공동체안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 학자들은 양측 통일안의 절충가능성도 제기했다. 해외학자들은 양측통일방안의 허와 실을 조명하면서 중재적인 노력을 경주하려 했다.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의 3대원칙」에 입각해 그동안 남북한 양측이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것은 남북한 당국의 실천의지가 부족하고 이 3대원칙에 대한 양측의 상이한 입장과 해석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점이 큰 원인이 되었다. 북측학자들은 3대원칙 가운데 자주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이를 통해서만 진정한 민족대단결과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에 대해 남측학자들은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상호의존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외세」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남측학자들은 무엇보다 평화적 원칙위에서 가능한 분야부터 화해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방안을 지지했다. 반면에 북측학자들은 그들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군사적문제들이 먼저 해결되거나 최소한 다른 분야와 병행하여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였다.

그밖에 통일의 장애요인으로서는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적 경험과 그것이 남긴 깊은 상흔이 아직도 통일을 향한 화해협력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리고 남북양측이 제시한 통일방안의 문제점은 「공존·공영」이라는 수사적, 선언적 언명을 강조하면서도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남한은 3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도달할 통일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상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연방제 통일방안의 선결조건으로서 반공법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강조하면서 결국 인민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북측학자들은 흡수통일론에 대한 경계심과 의구심을 강력히 표명하였다. 이러한 상이한 입장과 해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동안의 통일논의와 노력의 변화를 회고해 보면 역사는 분명히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적통일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러한 변화는 이번 학술회의에서도 감지되었다.

요컨대 이번 학술회의는 남북학자들이 직접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접점을 모색하려 했다는데 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이번 회의를 통해 남북간에 당국차원은 물론이고 학술,기업,예술,문화등 민간수준의 가능한 여러 분야에서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하는 것이 민족의 통합과 통일의 첩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기자가 본 남북통일 학술대회/“다음 학술대회는 서울이나 평양서…”/제3국 개최에 만감… 실천적 화두부터 풀자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실천적과제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냉엄하기만 한 분단현실은 통일이 성사되는 순간까지 관념적 허구일 수도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통일에 대한 얘기를 시작할때는 관념적허구를 실천적과제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화두를 풀어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된다. 너무 거창하게 얘기해 봐야 목소리는 허공을 맴도는 가성이 되기 십상이고 논의의 실천방안을 놓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벽돌한장을 쌓는다는 겸허한 자세로 보폭이 좁은 걸음걸이를 해야한다.

중국의 베이징(북경)에서 한국일보주관으로 분단이후 처음 열린 남북학자 통일학술회의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로 기록 될수 있다.

참석자들은 통일이 민족적 과업으로서 빠른시일내에 이뤄져야 할 시대적 책무라는데 대해 어느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완전무결한 의견일치가 이뤄진 셈이었다. 그러나 「통일의 원칙과 화해협력」및 「통일의 방식」등 구체적 주제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에서는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20여년 가까이 되풀이해 온 순환논리의 고리가 풀리지 않은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여기까지 이 학술대회는 관념적허구 차원이었다.

독일의 저명한 동독문제전문가가 독일이 통일된뒤『통일방안이 없어 독일이 통일을 못한게 아니었다』면서 『그렇다고 독일이 통일된것이 통일방안이 훌륭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이 새삼 생각났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결론이 있을수 없는 공식회의와는 별도로 가진 비공식 장외행사에서는 기탄없는 대화로 인식의 폭을 넓혔다. 공식회의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발표문의 문구와 표현 하나 하나에까지 신경을 썼지만 장외행사가 주석으로 이어질때는 서로가 못할말이 없었다.

공식회의에서는 『여러분(남측참석자)들이 기분 나빠 할까봐 주체사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북한의 주체사상철학자는 장외에서는 폭탄주를 사양하지 않았고 『우리 사랑에 입각해 인간적으로 얘기하자』고 대화에 적극성을 보였다. 공식회의에서는 학술회의결과를 합의문형태로 발표하자고 엉뚱한 주장을 폈던 북한측 참석자도 장외에서는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장이 그렇다는것』이라고 자신들의 주장이 상대적임을 시인했다.

인식의 공감대와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것은 통일이 실천적과제가 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노력들이 축적 돼갈때 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은 좀더 탄탄질수 있을 것이다.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나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안타까운 구석이 하나있다. 이처럼 뜻깊은 회의가 베이징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이같은 행사를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이나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열수 없을까.

26명의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다음회의가 성사될 경우 서울이나 평양에서 하자고 말했다. 서울이나 평양 개최가 힘들면 판문점에서라도 열자는 절충안도 나왔다. 우리측 자유의집이나 평화의집에서 하루를 하고 북측의 판문각이나 통일각에서 하루를 하면 된다.

이번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남한학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왔고 북한참석자들은 25시간 걸리는 평양발 베이징행 열차를 타야만 했다. 서울에서 판문점까지 1시간30여분, 개성에서 판문점까지는 1시간 거리이다.

남북은 이처럼 가까운 길을 내버려 두고 먼길을 통해 서로를 만나고 있다.

다음에는 먼길이 아니라 가깝고 쉬운길을 이용해 서로를 얘기해 보자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것이다.<이병규 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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