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인 논쟁지양 교류·협력강조/북대표 점심은 꼭 북대사관서 해결 눈길/북,첫날 김일성 언급 18차례 김정일은 4차례/주제발표문도 공동집필 “누가해도 입장 똑같다”「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는 분단후 처음 열린 남북학자들의 학술심포지엄 답게 숱한 뒷얘기를 남겼다.
특히 참석자들은 공식회의 외에도 두차례에 걸친 만찬을 통해 격의없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 화제의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북한의 김구식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사석에서 우리측 학자들에게 한완상 전부총리에 대한 근황을 물어 보며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김부소장은 『91년 7월께 미뉴욕에서 열린 북미해외 기독교협회 모임에 참석,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한교수등 몇몇 한국측 학자들을 만났었다』며 『짧은 대화였지만 한씨가 상당히 민족적 의지가 강한 「진보적 민족주의자」란 인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부소장은 『그후 얼마 안돼 한교수가 김영삼대통령밑에서 부총리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한교수같은 진보적 학자도 관리가 됐다는 걸 보고 북측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한동안 주시했었다』고 밝혔다.
○…일부 원로학자들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측 학자들이 발언중에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동지」를 얼마나 빈번하게 사용했는가를 놓고 기록을 해두는등 북측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정식 미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북측 김구식 부소장이 첫날 회의에서 18차례에 걸쳐 김주석에 대한 인용구를 사용하면서도 김정일에 대한 언급은 4차례에 그쳐 아직 김정일이 북한학계로 부터 존경심과 영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에대해 북한학계에 정통한 한 해외학자는 이같은 이교수의 분석에 대해 『북측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사상적 작업은 서두르지 않아도 서서히 무르익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반론을 전개했다.
○…최성일 김일성 종합대학교수는 1일 저녁 송별연회를 겸한 만찬이 무르익었을때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옆으로 일부러 옮겨가 상오의 공식토론 내용을 놓고 특별주문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교수는 김이사장이 청와대 대변인등을 지냈음을 의식,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교수가 더 낫지 않느냐』고 안부를 물은뒤 『당신은 영향력이 있으니 버그러지게(분열)쓰지 말고 합쳐지게 써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
그는 『우리체제 잘 알지 않느냐. 이를 인정하는 선에서 어떻게 하자, 체제변화는 인민들이 용납하지 않고 특히 윗사람들이 거부한다』고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한 주문을 했다.
그는 또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등 최근 당국간 남북대화에 빠짐없이 북측대표로 참석했기 때문인지 정부 관계자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최교수는 『대화가 없으니 만나지도 못해 섭섭하다』면서 통일원 구본태 통일정책실장, 김형기 정보분석실장등의 이름을 거명.
○…회의도중 장외에서 중진과 소장학자들의 인기를 끌었던 북측인사는 단연 주체사상 철학자인 손영규 사회 정치학회 연구사.
첫날 발표에서 특유의 논리로 통일 철학이념으로서의 사랑과 생명을 강조해서 주목을 끈 손연구사는 막힘없는 화제와 달변을 자랑했다.
손연구사는 『한국일보를 이틀후면 사무실에서 읽어볼수 있다』면서 『신문을 양심껏 잘써달라』고 기사 방향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측의 주제발표문은 발표자 개인집필이 아니라 공동 집필인 것을 확인케해 이채. 북한측은 주제발표문을 배포하면서 『누가 발표를 해도 우리의 입장은 똑같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1일의 「통일의 방식」주제발표는 발표자가 원래 손영규 사회정치학 학회연구사로 돼 있다가 박동근 조국통일 연구원 실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북한 참석자들은 회의가 끝난후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점심을 꼭 북한대사관에서 먹고와 눈길을 끌었다.
이 바람에 점심시간이 3시간으로 길어지기도 했는데 베이징의 관계들은 쌀회담때에도 북측대표들이 자신들의 대사관에 가 점심을 먹고왔다는 점을 들어 『대사관에 가서 의견 조율을 하고 오는것 같다』고 분석했다.한편 남측은 북한 참가자들에게 남측및 회의학자들이 묵고 있는 장성반점에서 함께 투숙할 것을 제의했으나 북측이 이를 정중히 사양.<베이징=특별취재반>베이징=특별취재반>
◎「통일의 방식」토론 중계/“현실과 이상사이 조화 관건”/북측선 시종일관 연방제 주장
31일의 「통일의 원칙과 화해협력」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긴장과 우려속에 다뤄진 반면 1일의 「통일의 방식」을 둘러싼 토론은 주제가 구체성을 띠고 있고 서로의 입장을 파악해서인지 양보없는 팽팽한 분위기를 나타냈다.
특히 북측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를 맡은 이정식(미펜실베이니아대)교수는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남북 어느 쪽에 편중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발제에 나선 고병철(미일리노이대)교수는 해외동포들의 한반도 통일방안에 대한 입장을 소개한뒤 민족공동체를 사상과 이념체계를 초월한 개념으로 규정하고 남북이 주장하는 통일방안과 개념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열거했다.
고교수는 『남북양측이 통일의 필연성과 민족적인 유대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서로가 상대방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화해와 협력을 전제로 대화하면 두 통일방안이 충분히 절충될 수 있을 여지가 많다고 했다.
이어 주제발표를 한 박동근 북한 조국통일연구원실장은 『20여년전 남북이 합의해 마련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한반도 통일의 주춧돌』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는 주장을 했다.
박실장은『3대원칙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자주야말로 통일방안의 핵』이라고 자주에 북한정책의 비중이 있음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나 권만학(경희대)교수가 나서 『무용한 정치적 논쟁보다 논리성과 현실성에 입각한 진지한 토론을 하자』고 브레이크를 건뒤 『남북현실을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해 여건변화에 주목해가며 교류, 협력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연구위원은 『91년도에 김일성주석이 통일에 대하여 연합방식을 채택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며 『이같은 용의가 폐기됐거나 변화했느냐』고 허를 찌르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김구식 북한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연방제는 하나의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며 연합체는 통일로 가는 하나의 과도기적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연각(서원대)교수는 『북측 주장에 제도통일을 후대로 미루자는 견해가 제시됐다』고 지적한뒤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방안에 변화가 없는지와 남조선 혁명론, 남한에 대한 혁명적 민주기지론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김학준 단국대이사장은 『이틀동안의 회의를 통해 남북통일이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제한뒤 『관계개선과 정상화를 위한 방향전환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이홍영(미버클리대)교수는 『이번 회담을 통한 솔직한 대화 자체가 의미있고 통일에 대한 큰 걸음』이라며 『버클리대에서도 한반도 통일논의의 기회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통일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가 관건이며 당위성이 있는 만큼 현실적 관계를 이해, 통일정책에 반영하고 상호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익 김일성종합대학교수는 『통일을 제대로 모색하자면 대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뒤 『우리민족은 하나고 운명공동체이므로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는 일없이 공존의 원칙에서 평화적으로 민족적 통일을 실현하자』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길은 오직 연방제통일뿐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버렸다.
임혁백(이화여대)교수는 『이번 통일회의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이 거론돼 통일에 대한 전망이 낙관적』이라면서 『공통점과 이익을 부각시키고 대화와 교류를 해야한다』고 말한뒤 탈정치화, 기본적이고 작은 문제교류를 주장했다.
김관기 북한 사회과학원연구사는 『통일의 기둥적인 핵과 민족문제 실현을 위한 길은 역시 고려연방제』라고 강변하고 『고려연방제는 구성원칙과 창립방안,세계의 민주염원에도 부합된다』고 판에 박은 주장을 되풀이했다.<베이징=특별취재반>베이징=특별취재반>
◎만찬회 표정/한국일보사기에 서명·통일염원 적어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는 1일 저녁의 송별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틀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석자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들이 역연했다.
이들은 『이같은 회의는 계속돼야 한다』면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
○…베이징 중심가의 한식당 「사이트 아리랑」에서 한국측 초청으로 이날 저녁7시께 부터 시작된 만찬은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한 순배를 돌자 이내 절정에 올랐다.
흥분과 설렘으로 만났던 양측 학자들은 우선 원만한 진행과 순조로운 마무리에 만족해했다. 이들은 걸쭉하고 진한 얘기들을 서슴없이 건네며 양측의 정치 체제를 풍자하거나 통일 열망을 비유하는 재담도 거침없이 나눴다. 3시간여의 저녁식사 시간은 폭소와 파안대소로 시종일관했다.
만찬의 분위기는 남북참가자의 대표격인 길승흠 서울대 교수와 김구식 통일연구소 부소장이 주도했고 폭탄주가 돌자 화제는 통일염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30대의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 30대야 생전에 통일을 꼭 볼수 있겠지만 여기계신 원로 선생님들도 생전에 보실수 있게 노력하자』고 분발을 다짐했고 이정식 미펜실베이니아대교수도 『술은 해로운 줄 알았는데 오늘보니 술이 통일을 위해 좋은 역할을 했다』고 주석의 분위기를 반가워했다.
○…이자리에서 만큼은 체제도 이념도 없었다. 그저 통일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만이 있었다. 만찬이 끝난뒤 참석자들은 한국일보사 사기에 서명과 통일염원을 적어 넣으며 다시 만날것을 기원했다.
송두율 독일 훔볼트대교수는 「통일의 길을 찾아 고민하자」고 썼고 일본에서온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는 「통일의 광장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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