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 모두 분열의 진통을 앓고 있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세운 문민정부인데 2년여만에 민심이 이반하고 자기의 정치생명을 위해 제 갈길을 찾아나서는 철새같은 정치꾼들의 모습이 정치환멸을 느끼게 한다. 여당의 정책연구소에서 자기갱신의 진단을 내놓았음에도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 「장난」으로까지 불렀다니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야당도 더욱 건실한 정책대안을 내지 못하고, 미리부터 정권쟁탈의 전초전처럼 지리멸렬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필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러한 파벌정치의 서글픔을 넋두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보도를 통해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는 것은, 젊은 정치지망생들이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신당조직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여당과 분열된 야당들에서도 각각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어느 정당의 반응이 옳고 그른가를 논하고자 하지 아니한다. 이 나라의 정치에서 기성정치인과 새 정치인의 교체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심각히 관찰해 보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코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성정치인은 어느 것에 못지 않게 후속정치인을 육성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 독일에는 정당마다 정치훈련원이 있고 유망한 젊은이들을 장학금과 교육훈련을 통해 배출하고 있다.
기성정치인들이 하는 정치를 존경을 갖고 흉내내고 계승해가려는 후배정치인이 산출되지 아니하는 정치, 그것은 한 마디로 정쟁의 악순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후배정치인이 무서워서도 허튼 짓을 하지 못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후배는 선배들을 내몰고 자기 발판을 키우려 하기보다 자기의 성숙에 충실할 때 차츰 정치지도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정치에서만이랴! 각계에서 전문가집단이 제대로 후속세대에게 전문기능과 직업윤리를 전승하지 못하고, 단순히 젊은 세대라는 이유로 기성세대를 밀어내려는 「단절」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급속도로 변화하여 세대간의 단절이 이만큼 심한 국가도 드문 것같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과 생각에서 배우고 닮으려는 자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새로운 관습의 축적 속에서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필자는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스승의 글에서 배우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설익은 생각을 내뱉듯 글들을 발표한다. 물론 과거보다 의사발표의 기회가 많고 다양해지니 자기 목소리를 높여야 할 필요가 커진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카타르시스처럼 써낸 글들이 수준높게 발전할 가능성은 매우 약하다. 미국에서 권위있는 학술지는 놀랍게도 학생들에 의해 편집되는데, 그들은 자신의 설익은 글들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글을 읽고 다듬어주면서 그러는 사이에 스스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실제로 관찰하면서 미국의 저력이 이런 과정으로 축적되어 간다는 것을 실감한 바 있다.
우리는 이제 들을 만큼의 수많은 슬로건은 다 들었다. 문민정치, 민주화, 개혁, 세계화등 이런 모든 과제들이 정권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을 그렇다고 선전한다면 역사 앞에 죄악이다. 이런 과제들은 기성정치인들이 착실한 기초를 놓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후속세대 정치인들이 완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많은 대형사고들이 펑펑 터지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개혁을 조급하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보인다. 정말 이제는 실수없는, 무너져 내리지 않는 개혁과 건설을 이룩하기 위하여는 세대간의 역할계승이 잘 터잡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런 면에서 젊은이를 아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문민정치가 무엇보다도 여기에 큰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요즈음 각 정당에서 탈당과 분당, 백가쟁명의 분열상과 물갈이론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반세기이면서 분단 반세기이기도 한 금년에, 얼마만큼 우리 정치와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가를 맥짚어 볼 때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근심스러워진다. 우리가 지금 이래야 할 때인가? 많은 사람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서울대교수·법사상사>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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