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남편이 한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물러나 1년 가까이 쉬고 있는데, 그 친구는 남편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남편이 답답해 할까봐 은근히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잘 적응하고 있어. 처음에 한 일은 자기 방 정리야. 책장에서 잠자던 책들을 먼지를 털어 다시 배열하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느라고 방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안 나왔다니까. 책상도 마음에 드는 걸로 샀는데, 자기 방을 꾸며 놓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본래 정돈을 잘하는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밤늦게 집에 와서 잠자기도 바빴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십여년만에 자기 방에 돌아온 기분이래』
남편이 일에서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은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몇년전에 남편이 공직을 그만 두고 한동안 집에서 쉰 적이 있는 다른 친구는 그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다.
『처음 몇달은 부당하게 물러났다는 분노, 인생도 내리막길이라는 쓸쓸함, 수입이 끊겼다는 공포,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소외감과 답답함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어. 그 기간만 잘 넘기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노년을 좀 일찍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이런저런 계획도 세우게 되지. 지금 남편은 일주일에 나흘씩 고향에 내려가 친척의 회사일을 돕고 있는데, 국민학교 동창들과도 재미있게 지내는 것 같애. 옛날에 스트레스 받으며 쓰러지기 직전까지 일하던 것을 생각하면 되돌아가고 싶지 않대』
『일을 그만둔 후 가장 필요한것은 취미와 친구야. 우리 남편은 한평생 취미다운 취미를 가질 겨를이 없었고, 골프같은 운동도 시간을 너무 뺏긴다고 하지 않아서 막막했어. 그런데 다행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잖니. 일주일에 한번 정도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나도 가끔 따라가서 소설들을 사오곤 하지. 완전히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약간 긴 휴가를 얻었다는 기분으로 평소에 하고싶던 일을 하면서 천천히 적응해나가야 해』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68)가 오는 연말 은퇴를 앞두고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는 영어와 이탈리어 공부, 그림 그리기, 여행, 암퇴치재단등 돕기, 채소밭 가꾸기등 평소에 하고싶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은퇴가 멀지않은 사람들은 약간 긴 휴가에 무엇을 할 것인지 참고하는 게 좋겠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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