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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이 없나/문창재 정치2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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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이 없나/문창재 정치2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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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한국전쟁의 포화와 총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 체결 42주년이었다.그날 미국 워싱턴에서는 김영삼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됐고 한국전 실종자 가족들의 유해반환 요구집회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정전협정을 깨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자는 선전공세가 더욱 요란했다.

○정전협정 42주년

그러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나라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신문에정전협정 42주년 특집기사가 보도되고 일부 방송이 「원한 맺힌 38선」같은 옛노래를 들려주며 감상적인 복고무드를 조성했을뿐 정전협정 파기책동의 부당성을 공박하는 정부성명이나 담화 한마디 없었다.

왜 말이 없는가.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무섭도록 치밀하고 집요한 북한의 선전공세를 못들은 체하는가. 평양방송과 신문 통신들을 인용한 내외통신 보도를 보면 북한이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려는 노력은 몸부림에 가깝다. 우선 국제 여론조성을 위해 북한은 해외의 친북단체들을 총동원해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협정 지지집회를 열고 있다. 6월25일부터 한달여동안 계속된 「조선인민과의 연대성 월간」이란 행사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의 자이르 짐바브웨 등에서 집회를 열어 평화협정 체결 지지성명을 채택했다고 북한방송은 보도했다. 또 인도네시아 주재대사는 수하르토대통령을, 적도 기니 주재대사는 무바소고대통령을 예방해 북·미평화협정 체결주장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지의사를 받아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파키스탄·조선친선협회와 연대해 평화협정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정착의 첩경이라는 내용의 「강령」을 현지 신문에 게재했다.

○북 파기공작 혈안

7월21일에는 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이 부트로스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공한을 보내 주한 유엔군사령부 철수를 요청했고 6월말에는 모든 유엔회원국에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외교비망록」을 보내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했다.

이런 외교공세 훨씬 이전부터 그들은 단계적으로 「정전협정 파기―평화협정 체결」 공작의 기초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91년3월 군사정전위 유엔측 수석대표에 한국군의 황원탁 소장이 임명되자 북한은 돌연 정전위 참석을 거부했다. 그 해 9월 연형묵 총리가 유엔 연설을 통해 『유엔사를 해체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남북 불가침선언 채택을 주장해 온 그들이 갑자기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새 협정을 맺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려는 전략이다. 「평화협정이 됐으니 주한 미군은 필요없다」는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다. 92년 9월에는 정전위 비서장회의를 보이콧했고 93년 4월에는 자신들이 추천한 중립국감독위 체코대표단을 쫓아냈다. 94년에는 자국대표단과 중국대표단까지 철수시켰고 올해 들어서도 폴란드대표단 축출(2월), 중감위 사무실 폐쇄(5월)등 일련의 계산된 조치를 계속해가며 『곧 정전협정의 파기를 선언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협정에는 유엔사와 북한·중국이 서명했다) 유엔군의 실세인 미국과 새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과 책동이 억지이고 불법임을 우리는 누구나 안다. 92년 발효된 남북한 기본합의서에는 분명히 「남북한간에 새로운 체제가 마련될 때까지 현 정전체제를 준수한다」는 약속이 있다.

○확고한 전략 필요

그렇다고 이렇게 무대응으로 일관해도 좋은가. 침묵은 금이지만 자신감과 의욕의 결여, 대응논리의 부재로 비쳐질 수도 있다. 북한이 로비의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도 유엔무대에서는 강대국들과 똑같은 한표를 행사한다. 그들을 우리편으로 묶어둘 확고한 외교전략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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