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책 밀려 정부 투자감소·농민 생산의욕 저하 부작용/땅값 급속히 상승… 농촌마다 빈부격차 갈수록 심화/이농가속 농지 매년1%줄어… 곡물수입 위기론까지광둥성 번우시 석기진 석강동촌 촌장 장금표(48)씨는 23대째 이곳에서 벼·사탕수수농사를 지어왔다. 60년대 하루 6전을 벌던 그의 수입은 이제 연간 3만위안(원·1위안은 한화 약 1백원)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수입증가는 작물생산증가보다는 땅값상승에 기인하고 있다. 지난87년 1㎡에 1백위안 하던 논밭가격은 그사이 5배이상 뛰었다. 특히 3년전부터는 경지가 시가지로, 한국의 청산리피혁공장등 향진기업이 들어선 공장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마을사람들 사이에서는 『1천만원호도 여럿 생겼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1천만원호라면 우리로 치면 십억대 부자라는 셈이다. 이마을 토박이 24대째가 되는 장촌장의 아들들은 더이상 농민이 아니기를 바란다. 큰아들(18)은 옷가지와 음료수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개체호가 됐고 작은 아들(18)은 시내 공상은행에 취직했다. 장촌장은 『지난87년 마을자체가 기업형태의 「경제발전공사」를 만들어 외국투자기업 유치등을 통한 소득증대에 힘을 쏟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93년2월 개발구로 지정된 광동성 삼수시 하구진은 개발구지정이전 1만무(1무는 약 2백10평)이던 논면적이 5천무로 꼭 절반이 줄었다.
논은 과수원과 양어장으로 개발됐다. 전업농들이던 1만7천여명의 인구중 순수농업 종사자는 몇년사이 3분의1로 줄었다. 대신 주민들은 오리, 장어양식과 광산개발로 월평균소득을 2천20위안에서 3천8백위안으로 끌어올렸다. 마을주민 펀시량(35)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5년전 마을에서 처음 양어장을 시작해 지금은 양어장면적 3백50무에 2백명의 종업원을 둔 기업가로 탈바꿈했다. 그는 한해 20만마리의 오리와 오리알등을 수출하는 백만원호다.
석강동촌과 하구진은 각각 급변하는 현재 중국농업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다.
경제개혁이 시작된 78년이후 중국농업은 비효율적인 집단농업체제에서 영세소농체제로 이행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개혁이 집중된 연해지역 도시주민의 소득증가와 생활수준 상승은 12억인구중 70%가 넘는 8억5천만 농민들을 들쑤셔놓았다. 맹류라 불리는 이농바람을 타고 농촌을 떠난 인구만도 1억1천만명을 넘는다. 지금도 무작정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드는 이민들이 연간 1천5백여만명에 달한다.
산업화에 따라 세계7위의 중국농경지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90년 9천80만㏊이던 농지는 지난해 8천7백40만㏊로 줄었다. 해마다 전 농토의 1%에 해당하는 1백만㏊가량이 줄어든다. 농민들이 도시로 떠나도 인구압력으로 1인당 경지면적은 0.1㏊에도 못미치는 0.08㏊(한국0.05㏊)에 불과하다. 도농간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이상용 주중대사관 농무관은 『공업위주 경제개발 전략에 따른 농업부문에 대한 투자부족, 도농간 소득격차 심화 및 농민들의 생산의욕 저하야말로 중국농업발전에 부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농업침체에 따른 식량생산 저하는 세계식량사정에 즉각적 영향을 미친다. 세계최대의 쌀 수출국으로 밀 옥수수 콩 면화 유채 돼지고기등 주요농축산물 대부분에서 세계 생산량의 10%이상으로 1,2위를 차지하는 중국이지만 인구증가·곡물생산 감소가 계속될 경우 2000년에는 최대 1백15만톤이상의 곡물부족사태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유사이래 처음으로 국민의 먹거리를 해결했다는 현 중국정권, 이제 그 성패는 다시 농업개혁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베이징=하종오 기자>베이징=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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