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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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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소설평)

입력
1995.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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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합일에 대한 강렬한 희구조성기의 새 창작집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는 비교적 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읽힌다. 본격문학을 대할 때 항용 그러한 것처럼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고 이 작품집을 펼쳐든 독자들도 일단 이 작가 특유의 어법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새 자신이 무장해제 당한 채 정신없이 작가가 친근한 어조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이번 창작집에 수록된 5편의 작품이 한결같이 여행이나 영화감상에서 그 소재를 취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일인칭 화자가 자신이 방문한 지역을 기행문 형식으로 보고하거나 영화를 보며 그 줄거리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경계심을 지우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국민소득 증대로 해외여행이 보편화한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주인공이 돈황이나 베니스 트리어 등지를 여행하면서 현지의 풍물에 곁들여 제공하는 고급한 안목과 경쾌한 사유의 곡예는 그 자체로 읽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족하다. 즉 구성의 평면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집에 빛을 던져주는 가장 큰 요인은 소설 곳곳에 녹아있는 작가의 풍부한 교양체험일 것이다.

일인칭 화자는 잠시도 「성찰하는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주위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며 역사와 실존의 문제에 탐색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하등 심각하지 않게 보이는 주인공의 여정을 뒤따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한 둔중한 주제 앞에 서게 된다. 그 주제는 그러나 거대한 암벽으로 돌출해 있기보다는 큰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처럼 곳곳에 잠복해 있어서 우리는 여유있게 이야기의 향연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돈황에서 혜초를 생각하고 모젤 강가에서 마르크스를 떠올리는 주인공은 또한 이방의 노점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불현듯 성욕을 느끼고 대학시절 시위 못지 않게 섹스에 탐닉하던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삶은 다면체이며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작가는 삶의 이러한 속성을 사막에서 마주친 바다의 신기루(「돈황의 춤」)처럼 이질적인 것의 돌연한 만남으로 표상하기도 하고 달리의 그림에 나오는 「녹은 시계」(「달리가 시계를 녹인 이유」)나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 「거푸집」(「모젤 강가의 마르크스」)같은 용해 이미지로 암시하기도 한다.

여행이란 결국 전혀 다른 시공간을 하나로 이어주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삶이 그러하듯 여행 또한 모순과 대면하고 진정한 합일을 추구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는 제목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완전한 만남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희구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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