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95년 즉 금년중에 1인당 GNP가 1만달러를, 그리고 2001년에 이르면 2만달러를 초과할 것이라는 정부의 추정보고가 있었다. 다분히, 이러한 지표들에 의해서 한국경제가 선진국으로 접근해 나가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강조하는 느낌을 받는 보고였다.그런데 이러한 밝은 경제전망의 보고에 접하면서도 그 예측의 실현타당성 검토의 문제는 차치하고, 심적으로는 어쩐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개발 초기에는 국민총생산·산업구조·기술수준등의 변화를 나타내는 물리적 기술적 제 지표가 경제발전 또는 후진성 극복의 척도로서 존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정신적 의식구조적 측면에서 후진성의 극복, 그리고 선진화지향의 척도를 찾고자 하게 된다.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고 있다. 이 사건의 인과에 후진성이 있고, 사고에 대한 개연성에 관련된 관리의 사후수습에 후진성이 있으며, 그리고 최근에 빈발한 유사한 사고가 교훈화 되고 있지 않다는 데에도 후진성이 있다.
그동안의 경제개발과정에서 성장드라이브 속에 졸속이 사회적 생리처럼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도처에서 모든 부문에 걸친 부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형사고의 빈발은 바로 이러한 풍조의 인과응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좌우명처럼 항상 「스테디 앤드 슬로」라는 말을 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는 풍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졸」과 「속」에 대해서 그들은 「견」과 「완」으로써 매사에 임하고 있다고나 할까. 「졸」과 「속」이 빚어내는 결과가 「불실」이라면 「견」과 「완」이 가져오는 결과가 「견실」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인 인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2∼3년에 구포열차사고, 목포항공기 추락사고, 위도훼리호 침몰사고, 서울 마포 및 대구가스 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등 많은 인명희생을 낸 대형사고들이 빈번히 있었다. 이 사고들의 원인은 예외없이 인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인재란 기술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구조의 소치라는 뜻이다.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는 것」이라는 속담은 바로 이것을 뜻할 것이다. 의식의 소유주체는 사람인 만큼 의식의 미성숙에서 오는 그러한 재해들은 인재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의 문제는 다시 의식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그 분야의 전문인, 기업인, 공무원 그리고 일반시민들의 의견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모두들 기술과 관련되는 지식도 풍부하고, 기업인·공무원 그리고 시민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인식도 충분하며, 도덕적 인식도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사고들이 연발하고 있는 소인은, 기왕의 사고에서 얻은 경험이 실천적으로 교훈화하지 않고 있는데에 있다. 사고에 따른 일시적 충격도 시간경과에 따라 마모되어버리곤 한다. 경험의 교훈화능력이 없는 것은 단적으로 사회적 능력의 빈곤, 그리고 의식구조의 후진성을 뜻하는 것이다.
의식구조의 후진성 극복은 다름아닌 각 직능층의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업인의 정통적인 기업가정신, 장인정신과도 같은 집념어린 기술자정신, 근로자의 성실한 근면정신, 관료의 철저한 공복정신·관리자정신등이 그것이다. 만약 각 직능층의 이러한 투철한 직업정신들이 응집되고 구조화해 어떤 사업에 임해졌다면 그러한 사고들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다.
경영혁신, 기술혁신, 각종 법적 제도적 장치의 강화등은 의식혁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회에 깊이 침투하고 내면화하면서 뿌리내릴 수는 없다. GNP를 대표적 지표로 삼고 있는 경제성장은, 의식성을 병행할 때 비로소 그것이 선진화의 길과 연결된다. 만약 그러한 병행이 없다면, 필경 경제성장은 쉽사리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후진성의 잔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세계화 역시 의식혁신이 선행조건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광복 50주년의 불꽃놀이는, 아무쪼록 졸속문화와 과도기적 풍토의 청산, 그리고 진정한 직업정신 및 의식구조 성숙화의 실현을 모색하는 신호탄이 되어 주기 바란다.<전국무총리·학술원회원>전국무총리·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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