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폭력·선정적 프로서 어린이를 보호하자”/시청 부적절한 프로 등급따라 자동 차단장치/의회,장착의무화 법안 마련 방송사 강력 반발미국 TV 방송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미 상원이 최근 TV의 폭력성과 선정성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취지하에 TV수상기에 「V―칩」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초안을 마련한데 이어 빌 클린턴 대통령도 이를 강력히 지지하고 나섰다. 폭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Violence」에서 머리글자를 딴 V―칩은 TV수상기에 설치할 경우 어린이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폭력성과 선정성이 담긴 프로그램이 자동차단되는 장치.
이 법안은 TV수상기 생산단계에서 V―칩 내장을 의무화하고 방송사가 폭력성 및 선정성과 관련, 각 프로그램에 등급을 매기도록 하고 있다. 부호화한 형태로 매겨진 폭력등급은 V―칩을 통해 판독되며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프로그램은 아예 수상기에 나타나지 않게 된다. V―칩은 기술개발이 완료된 상태인데다 장착이 간단하고 비용도 5달러정도로 저렴해 당장 실용화할 수 있다.
V―칩 찬성론자들은 『현실적으로 부모들이 어린이들의 TV시청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V―칩은 검열에 의하지 않고도 어린이들로 하여금 건전한 프로그램을 선별해 시청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도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한 상태에서 TV의 폭력성과 외설성에 무방비로 노출된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V―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나아가 『미국문화를 바꾸려면 미디어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며 『어린이들이 접하는 폭력의 총량을 줄이지 않고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V―칩 장착의무화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획일적인 검열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상원법안은 방송사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 프로그램에 등급을 매길 것을 권고하되 실패할 경우 대통령이 지명하는 전문가위원회가 이 일을 맡도록 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특히 누가 어떤 기준에 근거해 폭력성의 유무와 정도를 판단할 것이며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프로그램에 일일이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뉘앙스가 다르기 마련인 각 프로그램의 성격을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하고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V―칩 의무화를 추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질적인 검열권을 갖겠다는 의도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양측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이 문제는 정치적·경제적 이해가 맞물려있어 어느 쪽도 쉽사리 양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우선 의회의 경우 최근 급격히 수위가 높아진 보수주의 물결에 휘말려 민주·공화 양당 가릴 것 없이 반폭력·반외설 분위기 일색이며, 클린턴대통령 역시 연예산업의 폭력성에 관해 보브 돌 상원원내총무를 주축으로 한 공화당측에 기선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이 문제는 특히 내년 대선에서 「가족중심 가치관」이 최대 이슈로 부각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일찌감치 입장정리를 해두어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반면 방송사들로선 시청률 하락과 그에 따른 광고수입감소가 불보듯 뻔해 기를 쓰고 막아야할 형편이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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