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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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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사설)

입력
1995.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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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운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다 그 시간에 거기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생존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삼풍 참사의 통곡도 목이 쉰 이제, 사망자가 어이없게도 4백58명을 헤아리고 아직도 수많은 실종자를 남긴채 구조와 수습작업이 마무리된 폐허를 바라보면서 사상 최악의 비극을 되새겨 본다.

어지러웠던 정신을 간신히 가누고 생각해 보면, 이게 어인 일인가,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그것은 학살이었다. 그 분노의 날, 학살자는 누구인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반드시 희생당하게 되어 있었는데, 내가 당하지 않았다 해서 남의 일일 수 없다. 희생자는 나를 대신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족만 유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유족이다.

『나 먼저 갑니다. 내 소식을 꼭 전해 주세요』하고 백화점 여직원이 숨지면서 남긴 말은 온 국민에게 아무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르게 죽어가야할 까닭을 가르쳐 달라는 애통한 전언이었을 것이다.

매몰 10여일씩 만에 구출된 생환자들을 기적적이라 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이 기적적이다. 이 지뢰밭 같은 사회에서 용케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생환자다. 우리만 살아남은 부끄러움, 이 부끄러움으로 밖에 희생자를 애도할 길이 없는 우리는 슬프다.

한 가족이 어느 콘크리트 틈 사이에 끼였다가 속절없이 하나씩 숨을 거두어갈때 곁에서 차례로 이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을 나머지 가족의 혼절해 가는 통곡, 그런 통곡으로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울 수밖에 없다.

어린 자식이라도 살리려다 꼭 껴안은채 한덩어리로 숨져 나온 젊은 어머니의 처절한 자세로 희생자들에게 엎드릴 수밖에 없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것이 정말 앞으로 다시는 아무 탈도 없을 안심할 수 있는 일상인가. 수많은 목숨을 무더기로 잃은 것 말고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 없는 위험투성이의 사회로 꾸역꾸역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누구도 국민의 폭삭 주저앉은 심정을 추스려 주지 못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 이 허무의 심연을 무엇으로 메우며 기진한 허망을 무엇이 붙들어 줄 것인가. 아무도 누구를 어떻게도 도와줄 수 없는 무력감이 더욱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는 살아남는 것이 슬픔도 부끄러움도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용기를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 것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 건물도 윤리도 억장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사회의 건설에 동참하기 위해 지금 모두 슬픔을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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