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유엔 진퇴양난 “수렁”/안전지대 잇단함락 중재역 흔들/미·영·불 이해대립 공조균열 탓내전 39개월째에 접어든 보스니아에서 유엔의 권위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유엔이 보스니아에 설정한 6개의 안전지대중 스레브레니차와 제파가 세르비아계의 수중에 떨어졌고 고라주데마저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다. 내전의 주도권을 거머쥔 세르비아계의 공세가 이대로 지속될 경우 주민보호를 명목으로 한 안전지대는 도미노처럼 붕괴되고 유엔은 자임하던 중재자역을 수행할 발판마저 잃을 처지다.
유엔이 이같은 굴욕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보스니아 유엔보호군(UNPROFOR)의 세 기둥격인 미국 프랑스 영국의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서방측을 대변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보스니아정책 부재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간 보스니아에 최대 군병력(3천8백명)을 주둔시켜 온 프랑스는 자국군 보호를 위해 미국과 영국에 보다 단호한 군사대응을 요구하고 있지만 개입을 꺼리는 미국과 영국은 시종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만약 미·영 두나라가 사태를 방관할 경우 자국군의 전원철수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다.
빌 클린턴미행정부로서는 딜레마이다. 우선 프랑스의 요구대로 보스니아 내전에 본격 개입할 경우 자국군의 희생이 불가피하며 이는 앞으로 16개월여 남은 클린턴의 차기대선 행보에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방관적 태도로 일관한다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강력한 대선경쟁자인 공화당의 보브 돌 상원원내총무가 보스니아 회교정부에 대한 무기금수 해제를 내용으로 한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행정부는 회교정부가 무기와 탄약을 충분히 제공받을 경우 보스니아의 전면전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는 판단아래 이를 극력 반대해 왔다.
안팎의 난관에 처한 클린턴행정부는 일단 공군력 및 병참지원등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자국군의 희생을 막고 프랑스를 진무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영 ·불 3국이 19일 또 다른 유엔 안전지대인 고라주데를 방어키로 우선 합의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합의에도 불구, 고라주데의 안전이 확실히 담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군사적 역할분담과 세부 방어계획에 대한 서방 3국의 이견이 조정되지 않은데다 세르비아계가 고라주데 주위에 군사력을 집중시켜 내전발발후 최대규모의 공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서방의 방어 마지노선이 고라주데에 설치될 경우 프랑스군을 위주로 한 1천명의 신속대응군(RRF)을 투입하고 미국이 헬기 2백대를 지원, 이들의 수송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보스니아사태에 대한 유엔과 서방측의 의지는 고라주데 방어를 놓고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끝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는 개입이냐, 도의적 책임을 방기한 비겁한 철수냐 하는 선택이 강요될 전망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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