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당국인 재정경제원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통과된 주세법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를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법안이 통보되는대로 이를 수용할 방침』이라고 공식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전날까지도 『지방주류판매상이 자도주를 50%이상 의무구매하도록 한 주세법개정안은 반경쟁적이고 위헌소지마저 크다』고 강조해 온 재경원이기 때문이다.『위헌소지가 큰 법률을 왜 수용하나』란 질문에 재경원 고위간부는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통과시킨 법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없는 아주 짧은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생각이 틀린 것』이란 말은 끝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법안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소신자체가 하루만에 달라진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홍재형 부총리는 이날 상오부터 주세법을 둘러싼 당정마찰문제를 놓고 민자당과 협의를 가졌다. 그리고 당정협의 직후 재경원은 개정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가뜩이나 선거전부터 정부의 비협조에 고까운 눈길을 보내고 있는 당에 주세법대결로 대통령 재의까지 운운하면서 또다시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되겠다는 「배려」가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논리로 밀린 KO패나 판정패도 아닌 제대로 주장조차 펴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기권패」임이 확실했다.
재경원은 출범직후 지나친 권한과 독주탓에 「공룡」이란 말을 들었었다. 그후 「매사를 매끄럽고 잡음없이 처리하라」는 홍부총리의 주문이 따랐다. 이번 주세법파동에서 재경원은 스스로 싸움을 포기, 「매끄러운 당정관계 도모」엔 성공했지만 헌법정신과 시장원리를 망각한 채 어처구니없이 통과된 이상한 법률을 추인해주었다. 「공룡」에 대한 경고는 재경원에 독주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남의 독주까지 막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소신있고 당당하던 「공룡」의 위용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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