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산업은 어떻게 육성해야 하며 어느 부처가 주도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여러 부처가 관련되어 있지만 특히 정보통신부와 문체부 사이의 견해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이 문제의 핵심에는 소위 부처간 이기주의라는 것도 한몫 하고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멀티미디어산업에 관련되는 기술의 무게에 대한 과잉의식이 문제의 해법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는 두 부처가 마찬가지인 것같다. 기술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정보통신부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문화산업임을 잊고 있는 것같고, 문체부는 담당해온 업무의 성격상 가질 수 밖에 없는 기술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다보니 정작 멀티미디어산업의 문화예술적 중요성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은 영상, 음성, 문자를 동시에 처리해 줄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현재는 기존의 PC에 음성카드나 동영상 정보처리를 가능케 하는 MPEG보드같은 장치를 달아야만 가능해지나 언젠가는 모두 일체화할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멀티미디어 산업이란 바로 이같은 컴퓨터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말한다. 그 소프트웨어의 외형적 형태는 CD롬이나 CD I, 비디오테이프, 플로피 디스켓같은 것일 수도 있으나 그런 용기에 담기지 않고 PC통신이나 전화선같은 것을 통해 주어질 수도 있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의 핵심적 특징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소프트웨어에 담기는 문화적 내용이나 정보내용을 사용자가 자유자재로 능력껏 배열, 조합할 수 있고 그 내용에 변형을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영화나, 방송프로그램, 비디오, 책같은 것은 완성된 형태로 주어졌고 따라서 주어진대로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의 CD 롬에 담기는 책이나 영화는 예전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으로 상호작용성(혹은 대화성)이라는 멀티미디어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호작용성이 충분히 활용되어 사용자가 조작을 가할 수 있는 「대화형 영화」 「대화형 동화, 소설」같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예전 문화와는 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보다 능동적인 문화향유를 가능케 하고 있다.
앞으로의 멀티미디어산업은 이같은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개발하여 사용자에게 기존의 문화와는 다른 체험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멀티미디어산업과 관련해서 전자게임의 발전문제가 우선적으로 대두되는 것도 온갖 영상처리기술이 다 동원되는데다가 상호작용성의 기능이 십분 활용된 최초의 멀티미디어형 문화가 전자게임이기 때문이다.
쉽사리 전망할 수 있는 것은 멀티미디어시대의 문화예술은 상호작용상의 기능을 십분 활용할 상호작용형, 혹은 대화형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정보화시대에 문화예술영역의 핵심적 변화가 여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일방향의, 수동적인 소비패턴을 가진 문화와는 형태를 달리하는 문화예술의 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와 지원도 절실하나 기존의 문화예술인들이나 새로운 지망생들이 빨리 신기술 사용의 방법을 터득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시급하다. 또한 기술만 좋으면 무조건 유익 하고 잘 팔리는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개발정책과 함께 문화정책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멀티미디어는 온갖 문화예술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의 문화적 취약부분이 어느 곳인지 해외시장을 파고 들 수 있는 우리의 문화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발굴, 개발해 낼 필요가 절실하다. 예컨대 영국이나 프랑스등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이 선점해 버린 전자게임의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문화정책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의 영화문화나 출판문화가 청소년문화의 발판이 되지 못했다는 판단아래 전자게임을 새로운 청소년문화의 보고로 개발하기 위해 지원육성하고 있으며 「프랑스 터치」의 혹은 「영국 터치」의 게임 소프트개발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이룩한 몇 가지 성공에 고무되어 민족문화의 육성도 이루면서 미국과 일본에 맞서 세계시장 진출도 도모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멀티미디어산업은 기술개발과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정보통신부가 계획하고 있는 게임 제작도구의 개발등 모든 기술개발과 지원정책은 퍽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국내의 문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세계시장에서 틈새시장을 찾아낼 것이냐는 문화적 선택과 전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서울대 교수·언론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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