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연속성 이유 사법심판 배제/신군부 집권의도 확인등은 성과서울지검이 18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등에게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림으로써 5·18 광주민주화 운동 고소·고발 사건수사는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들에게 사법적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사실상 마감됐다.
우리 헌정사는 물론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두고 고소인들의 「내란죄 인정」주장과 피고소인들의 「무혐의」항변 사이를 줄타기해 왔던 검찰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끝에 「공소권없음」이란 결론을 내림으로써 검찰수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검찰의 결정은 치밀한 법논리로 포장돼 섣부른 법률적 반박을 주저하게 하지만 결국 『쿠데타가 성공하면 그 과정은 문제되기가 어렵다』라는 정치논리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특히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인해 모처럼 검찰이 공들여 확인한 신군부의 집권의도나 공수부대의 광주부근 주민 사살등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전두환 전대통령등 이른바 신군부의 정권탈취를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아니어서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이중적 구조를 띠고 있다.
신군부의 집권과정에 있었던 전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 비상계엄전국확대, 정치인사 체포및 가택연금, 국보위설치등 일련의 사건은 이른바 보안사의 「시국수습 방안」으로 포장된 치밀한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일종의 정권창출의 준비 또는 기초행위였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검찰은 발표문에서 『군의 전면등장과 정치개입을 의미하는 비상계엄전국확대나 정치활동 규제문제등은 대통령의 정치적 단안에 따라 입안, 추진돼야 하는데도 전보안사령관이 직무상 관련이 없는 보안사 참모들에게 지시, 입안케 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만 취했다』고 못박고 있다. 이 결론은 신군부의 집권이 사실상 정권찬탈의 목적으로 진행된 내란이었다는 행간의 의미를 읽게 해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검찰은 독일과 일본등 대륙법계통 국가의 형법학자들의 「승인의 규률이론등을 원용, 『새정권이 출범, 새로운 헌법질서가 실효화된 이번 사건의 경우 신군부가 정권 창출과정에 취한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사법심사에서 배제된다』며 내란죄 적용을 비껴갔다.
이같은 법이론 원용의 근저에는 헌정질서의 연속성과 관련된 사건을 사법적 잣대로 평가할 경우 5공 출범이후 새헌법과 법률에 따라 실효성이 인정된 헌정질서와 법질서가 전부 무효화돼 정치적, 사회적, 법률적으로 중대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현실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은 군사반란의 혐의는 인정되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신군부측을 기소유예처분했던 12·12때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기소권의 포기」라는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결정에 대해 5·18 피해자뿐 아니라 재야의 거센 반발이 예상돼 이번 사건의 경우도 12·12사건때처럼 항고, 재항고와 헌법소원등의 볼복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다음달 15일로 만료돼 한달 남짓한 기간의 여유밖에 없어 사실상 서울지검의 판단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마무리됐다고 할수있다.<김승일 기자>김승일>
◎5·18수사 정치적인 의미/현정부 「입장」 고려 역사에 평가미뤄/국민감정과 다른 결론… 파장 관심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사법적 시비는 검찰이 18일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끝났다. 신군부가 80년5월17일 전국으로 계엄을 확대, 광주민주화운동을 유발시킨뒤 결국 그해 8월 최규하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정권을 탈취했다는 고소·고발내용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내란은 실패하면 처벌대상이 되고 성공하면 처벌할수 없다』는 항간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를 제시했다.
물론 5·18과 같은 정치적 사건의 평가를 검찰에 맡긴 것 자체가 무리일수 있다. 실제로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도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검찰로 하여금 판단을 내리라는 것 자체가 검찰에 과부하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의 처리는 결코 잘됐다고 평가할수 없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당시 신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탈법적인 물리력 행사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는게 국민의 정치적 감정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감정에 부합하는 매듭과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랐어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정부는 출범이후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 관해 과거 정권과 다른 평가와 해석을 했다. 12·12사태에 대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평가했고 5·18에 대해서는 『현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신군부세력의 잘못에 대해서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것으로 유보하면서 아무런 정치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정부의 집권세력이 과거 신군부에 의해 탄압받으면서도 민주화운동을 통해 극렬히 저항하기는 했지만 법통으로 보아서는 당시 세워진 헌정질서를 이어받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김영삼대통령도 취임과 동시에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5·6공과의 차별화를 정치적으로 부각시켰지만 과거 정권의 협조를 받았던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검찰의 수사결과는 이같은 현정부의 입장에 따라 예정됐던 것처럼 보인다. 12·12사태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죄는 인정되나 처벌가치가 없다』는 것이나 이번처럼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정부의 해석을 법률적으로 각색한 것같기도 하다. 결국 이번의 검찰 수사발표로 80년대의 사건들은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정권찬탈의 사례로 기억될 정치적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런 판단없이 이를 넘겨버린 것 또한 불행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신재민 기자>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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