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70여구 신원확인조차 못해/비탄속 “혹시나” 실낱 희망도사고 19일째를 맞는 17일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현장에서는 41구의 시신들만 무더기로 발굴됐다. 연이은 기적의 생환이래 작업방식이 생존자 수색위주로 바뀌었지만 16일 대형 타워크레인이 설치돼 콘크리트 상판을 제거하는 작업이 병행되면서 시신만 하루 50여구 이상 대량 발굴되고 있다. 16일에는 참사이래 가장 많은 55구가 나와 사고당시의 처참한 악몽을 되살리게 했다.
이날 상오 7시16분께 B동 중앙통로 북측부근 지하를 파헤쳐 가던 포클레인이 B동 지하3층 상판일부를 걷어 내자 작은 공간이 발견됐다. 10여명의 구조대원들은 즉시 콘크리트 상판 아래에 난 작은 공간을 통해 생존자 여부를 확인했다. 철근으로 뒤엉킨 콘크리트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발견됐다. 콘크리트를 파헤쳐 나가자 숨진지 오래인듯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나왔다. 회색 시멘트가루와 피로 뒤엉킨 살색 상의와 보라색 스커트가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전해줬다. 3번째 발견된 희생자는 삼풍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찢어진 유니폼에 「김선영」이란 명찰이 달려 있었고 목에는 14K 금목걸이가 찌그러진 채 걸려 있었다.
시신들은 심하게 부패되거나 불에 탄 채로, 또는 콘크리트 상판에 눌려 신원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중에는 수일 전에 사망한 듯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희생자도 간혹 있어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희생자들의 신원은 대부분 신분증이나 소지품을 통해 확인되고 있으나 날이 갈수록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는 시신도 속출, 사고대책본부는 지금까지 4백여구의 시신중 70여구를 국립수사과학연구소에 옮겨 유전자감식을 의뢰했다.
이날까지 제거된 잔해는 총 3만4천여톤중 79%인 2만7천여톤. 작업이 진전될 수록 『시신이라도 빨리 찾았으면』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처로움과 또 한번의 기적을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권혁범 기자>권혁범>
◎「삼풍」 역대 최대 인재
삼풍백화점붕괴참사는 역대 사건사고중 최대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최악의 인재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정부수립후 발생한 10대 사건사고중 5건이 선박사고였다.
또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93년 2월이후 발생한 대형사고가 역대 10대 사건사고중 3건을 차지했다. 10대 참사중에는 들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 성수대교붕괴사고(32명사망)나 지난 70년 와우아파트붕괴사고(33명) 77년 이리역 폭발사고(59명)등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고였다.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천재지변은 지난 59년의 사라호태풍으로 9백29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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