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천지에서도 희망 잃은적 없어/출근시간되니 잠깨 “살았구나” 실감/생존자 더 있을텐데… 부모님께 효도 하고파『진짜로 내가 살아있구나』 16일 상오 6시께 잠에서 깨어난 박승현(19)양은 병원 침대위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고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7일만에 다시 맛보는 지상에서의 단잠이었지만 여느때처럼 출근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어났다. 매몰 3백77시간의 충격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지만 박양은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기자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간밤에 잠은 푹잤나.
『잠이 잘 오지않아 15일 하오 11시께 수면제를 먹고 잤다. 그러나 새벽녘에 깜짝깜짝 놀라며 자주 깨곤 했다. 특별한 악몽따위는 꾸지 않았으나 푹 자지못해 좀 피곤한 느낌이다』
―아픈 곳은 없나.
『온몸이 욱신거리듯 쑤시고 머리와 어깨에 통증이 남아있다. 또 다리가 많이 아프다』(박양은 오른쪽 다리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현재 심정은.
『살아있다는 것이 고맙고 나 자신도 그렇게 오랫동안 지하에 갇혀있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 얼떨떨한 느낌이다』
―식사는 제대로 했나.
『미음을 조금 먹었지만 배가 무척 고프다. 밥을 먹고 싶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팥빙수를 실컷 먹고 싶다. 그리고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가서 물타기 기차를 타고싶다』
―건강을 되찾으면 무엇을 할것인가.
『친구 혜진이와 함께 휴가를 얻어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
―장래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 있는가.
『당분간은 무조건 쉬고 싶을 뿐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세울 틈도 없었다. 하지만 (지하에 매몰돼) 갇혀있을 때 다짐했던 게 있다. 부모님께 더욱 효도를 해야겠다는 것과 오빠와 동생에게 다정다감한 형제가 되겠다는 게 가장 먼저 해야할 목표다』
―구조되자마자 매스컴에서 크게 보도를 했는데 소감은.
『내 이야기가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박양은 수줍은 듯 얼굴을 약간 붉혔다)
―사고당일 비번이었다고 하는데.
『잘못 알려진 이야기다. 원래 근무일이었다』
―매몰당시 가장 안타까웠던 때는.
『구조대원들의 대화와 작업하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 살려달라고 몇번이나 외쳤지만 그냥 지나칠 때마다 무척 안타깝고 괴로웠다. 하지만 죽는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다』
―구조됐을때의 느낌은.
『구조대원에 의해 입구가 넓어지면서 잠시후 밝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셨지만 기분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와 취미는.
『발라드풍을 좋아하고 가수 김혜림의 노래를 곧잘 따라부른다. 운동이라면 보는거나 직접 하는거나 모두 좋아한다』
―춤을 잘 춘다는데.
『좋아는 하지만 잘 추는것은 아니다』(박양은 혀를 살짝 내밀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생존자가 더 있을 것 같은가.
『아직 정신이 완전히 안들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존자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더 있어야 할텐데…』
―끝으로 하고싶은 말은.
『부실공사가 원망스럽다. 이제 정말로 이땅에서 부실공사란 것이 없어졌으면 좋겠다』<염영남 기자>염영남>
◎「박승현신화」 어떻게 가능했나/긍정적 성격·「기적공간」 합작품
/공포·외로움 극한상황 삶의 의지로 떨쳐/“충격땐 인체도 겨울잠” 물없이 생존설도
박승현(19)양의 신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양이 3백77시간 동안이나 매몰돼 있던 곳은 가로 1.6m, 세로 2m, 높이 60㎝의 좁은 공간. 겨우 옆으로 구부린채 비스듬히 누워 있을 만한 크기였다. 바닥은 물기에 젖어있었고 머리쪽에는 타일이 깔려있어 누운채 몸을 뒤척일 수 있었다. 이 기적의 생존공간은 무너지지 않은 지하주차장 기둥이 콘크리트상판을 받쳐주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콘크리트더미 사이로 공기가 들어와 호흡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치명적인 외상도 없었고 바닥에 옷가지와 마네킹이 널려 있어 두려움과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었다.
구조직후 박양은 『물은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리학적으로는 물을 전혀 먹지 않는 기간이 1주일이상 지속되면 건강한 사람이라도 곧 숨지게 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통설. 수분 공급이 끊기면 인체내에 전해질 이상이 생기고 노폐물이 축적돼 신장 및 심장이상등으로 생명유지기능이 마비된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날 콘크리트더미 속에서 1주일이상이나 물을 마시지 않고 있으면 탈진상태에 빠져 의식마저 잃을 수 있기때문에 의학계에서는 박양이 무의식상태에서 어떤 형태로든 수분을 섭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치료중인 급성신부전증 환자가운데는 스스로 물을 마시고도 물을 입에도 댄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의학계 일부에선 그러나 갑작스런 외부충격으로 두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생체시계가 느려져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인체 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경우 박양의 말처럼 물을 마시지않고도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란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박양이 살아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은 강한 정신력이라는데 의학계의 의견이 일치한다. 박양의 발랄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극한상황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이홍식 과장은 『극한 상황에서 물리적 조건이 동일할 경우 삶의 의지와 성격이 생존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라고 말했다.
박양의 생존조건은 결국 최소한의 생존공간과 콘크리트더미 사이로 유입된 공기, 별다른 외상이 없었던 점등 외부적인 요인과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던 셈이다.<이현주 기자>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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