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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 그리고 삼보(틈으로 본 세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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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 그리고 삼보(틈으로 본 세상:6)

입력
199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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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틈에 넘치는 창조적 가능성을 모색한다/삼풍참사는 생명가치 잊어버린 물신주의 만연때문/주변 모든것과 공생노력때 민족원형 「풍류」 살아나숨어 있던 작은 틈이 갑자기 거대한 구멍으로 확 벌어졌다. 캄캄한 그 구멍 속으로부터 끊임없이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나온다.

수없는 끔찍한 시체와 시체, 몸부림치는 중상자들, 통곡 통곡 통곡, 망연자실한 정부,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는 대책위, 난무하는 특호활자들, 귀 찢어지는 끝없는 보도와 보도. 그 사이를 음산한 발자국소리를 내며 배회하는 죽음의 귀령(귀령)들. 지옥이다.

그러나 이 지옥은 30년의 날림근대화속에 이미 숨어 있던 틈이다. 틈. 우리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무엇일까?

○“목숨보다 돈” 치명적 틈

삼풍참사 직후 각 자치단체들이 관내의 모든 아파트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려 하자 아파트주민들이 난색을 표했다 한다. 요컨대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집값! 돈. 경제가치다.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바로 이 생명가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가장 치명적인 틈이다.

그 캄캄한 틈에서 오직 자원봉사시민들만이 빛나는 등불이었다. 한 젊은이가 말한다. 『물론 겁나지요. 하지만 저 속에서 사람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그만 뛰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 측은지심. 생명존중의 기본적 가치관이다. 이것이 아직 시민들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사망한 백화점여직원 소영아씨의 죽기 전 일기.

「피곤하다. 꿈을 꿨는데 라커룸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천장이 낮고 화장실 같았다」

이것. 생명의 신령함. 다가오는 자기의 어두운 운명을 예감할 수 있는 깊은 영성을 가진 삶이 바로 인간이다.

국가를 이끈다는 자칭 정치지도자, 경제건설을 기획하는 이른바 경제엘리트들, 국민의 사상과 정신을 지도한다는 지식인이라는 자들. 이들 모두가 예외없이 사람은 신령한 영성을 가진 고귀한 생명이며 정치도 건설도 학문도 바로 이 생명의 보위와 신장과 해방에 그 목적이 있음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본말이 바뀌었다.

그들이 그동안 입만 벌리면 강변해 왔고 국가적 목표이자 중심가치관으로 떠벌여온 물량적 성장과 전면개발의 도저한 물질지상주의의 실상이 바로 오늘의 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삼풍당사자의 극형과 안전관리청 신설로 해결될 문제인가? 이것은 근본 가치관의 문제이다.

본디 우리 민족은 권력이나 지도자보다 민중이 훨씬 더 강하고 슬기로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분명 못났음에도 잘난 체 거드럭거리는 자칭 지도자들에게 기대할 때는 지났다. 그들이 벌려 놓은 이 무서운 틈에서 시민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설 때다.

삼풍참사는 우리 사회의 중심가치관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다. 물론 경제가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생명가치다. 생명을 잃고 나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생명을 위해서만 경제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 물신이 된 경제가치 일변도의 가치중심을 이제 생명가치쪽으로 단호히 이동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서서히 경제가치 자체의 내용,질과 방향을 영성적 생명가치쪽으로 유도, 접근시켜야 한다.

이것이 생명운동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들, 인간가치와 정체상실, 극심한 자연생태계 파괴, 그리고 공동체의 해체와 사회윤리의 실종에 대한 근본적 대안운동이 생명운동이다. 생명운동은 먼저 인간이 자기 안에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을 모신 거룩한 삶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공경함으로써 우주적인 실존적 자기성취를 하도록 권유한다. 그리고 자기가 그렇다면 이웃인간도 역시 신령한 우주생명임을 인정하고 공경하곁 동식물, 무기물등 일체 삼라만상이 모두 다 신령한 우주생명을 모신 거룩한 삶임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환경파괴를 원천적으로 극복하고 나아가 물건, 기계와 구조물마저도 역시 그러함을 인정함으로써 물건과 공생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우주생명임을 깨달아 탁월한 차원에서 개성화한 인간들끼리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연대하는 그물망과 같은 시민자치, 주민자치 공생체를 만들어가는 운동이 바로 생명운동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죽임」에 대한 「살림」이라고도 부른다.

○생명운동 확대되어야

이제 이 운동이 소수의 환경단체나 주민자치운동의 한계를 벗어나 전 시민들 속에 확대되어야 할 때가 온 것같다. 교육으로부터 가정및 사회생활의 예절과 구체적인 일상적 삶, 나아가 정치 경제 문화와 과학에 이르기까지 바로 이 영성적인 생명의 세계관, 가치관이 관통되어야 할 중차대한 전환점에 온 것같다.

사실 문민정부 출범이래 잇달은 대형 건물붕괴와 가스폭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지하의 초대형 사고들, 거듭된 참혹한 존속살해등을 겪으면서 시민들 속에서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질문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원인이 무엇이며 대안은 또 무엇인가? 원인이 무엇인지는 거의 누구나 감지한다. 그러면 대안은? 대안은 분명 생명운동이다. 그러나 그 대중적 실천은?

나는 이 마지막 질문에 부딪칠 때마다 천만이 넘는 불교신자들과 이천만에 가까운 기독교·천주교신자들을 늘 생각하곤 했다. 왜냐하면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영성적 우주생명사상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15년 전부터 신부와 목사, 신학자들에게 생명신학의 정립을 역설해왔고 여러 스님들에게 생명운동이야말로 불교 본연의 깨달음과 자비와 중생구제운동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인지 의연 적막강산이었다.

그런데 요 얼마전 불교 케이블TV의 요청으로 강남 구룡사에서 「불교와 생명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녹화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제안한 불교 나름의 생명운동은 「귀명삼보 운동」이다.

삼보는 불·법·승을 말한다. 불보는 인간과 뭇 중생이 제 안에 신령무궁한 우주생명, 끝없이 생멸 변화하면서도 동시에 불생불멸하는 부처의 법신을 모시고 있으니 그것을 깨쳐 개성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며 법보는 모든 이웃과 삼라만상 안에서 신령한 우주생명인 부처를 발견하고 모셔 공경하고 자비를 베풀며 불살생을 행하여 그 생명의 영적 자유가 만개하도록 돕는 실천으로서 「죽임」의 유전연기를 「살림」의 환멸연기로 역전시키는 사회적 활동이며, 승보는 깨달은 자들의 공동체이니 자기 안의 우주생명을 깨쳐 개성화한 인간들이 뭇 중생과 함께 화엄의 그물망같은 자유로운 다중심적인 연대의 지역자치 공생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삼보는 제 몸 안에 이미 모셔져 있으니 먼저 제 안의 산 부처에게 절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듣고 있던 숱한 불자들의 눈 속에서 일어나는 영롱한 슬기의 불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슬기의 불꽃이 이제 멀지 않아 이 사회 곳곳에서 불교 특유의 그 깊은 부드러움으로 아름답게 타오르기 시작할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또 바로 그 얼마 전 여러 기독교 신학자들이 모인 생명신학 세미나에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그들의 열기는 대단했으며 논의의 내용은 진지하고 심오했다.

내가 그날 한 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생명신학 정립과정에서 동양의 기사상과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신약의 「프뉴마」의 새로운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예수의 생애 전체가 하나의 심오하고 광활한 생명운동이니 먼저 신령한 우주생명인 하느님의 육화, 그리고 그 우주생명의 활동인 조건없는 사랑과 뭇 생명에의 섬김, 죽음과 부활 이후 우주생명을 모신 인간들의 자유로운 영성적 생명공동체로서의 초대교회 성립. 이 모든 과정을 이미 한 몸에 품은 것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이라는 것. 그러매 먼저 「내 안의 우주생명」을 자각적으로 모시는 운동부터 시작할 것.

사실 나의 생명운동의 기초는 동학의 「시천주」에 있다. 시, 곧 「모심」은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으며 한 세상 사람이 서로 분할할 수 없는 전체우주를 각자 각자가 나름대로 깨달아 실현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우주진화의 3법칙인 「내면의 의식증대, 외면의 복잡화 자기조직화, 그리고 개별화를 통해 질적인 전체를 실현한다」에 그대로 대응하고 있다. 바로 이 3법칙이 생명운동의 실천과정이며 또한 이것이 인간과 삼라만상 모두 안에 생성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보편적인 생명공경의 과학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의 풍류, 바로 그 생명사상에 이어져 있다.

○영의 바람과 깊음의 물

풍류는 뭇 생명을 그 성정 나름대로 살리는 사상이며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의 하느님사상까지도 포함한다. 동학에 기초한 나의 생명운동과 불교·기독교·천주교등의 나름대로의 생명운동은 열심히만 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원형인 풍류를 새 모습으로 살려낼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민족 나름의 깊고 넓고 멋진 우주적인 생명의 중심가치관을 갖게 될 것이다. 삼풍참사의 저 컴컴한 틈으로부터 망각 저편의 풍류가 도리어 새롭게 솟구쳐 흐르리라 나는 확신한다.

강원룡 목사님이 시골 어느 숲 속에 아담한 집을 한 채 지어놓고 생명문화연구소를 차린다. 어느 날 내게 그 옥호를 지어달라 주문해 대뜸 답하길 「바람과 물 연구소」라 했다. 매우 흡족해 하셨다.

바람과 물.

니고데모의 영. 창세기 1장의 저 「하느님의 영이 깊음 위에 감돌았다」의 뜻, 감도는 영의 바람과 혼돈한 깊음의 물.

생명은 그런 것이다. 풍류요 풍수다. 그것은 신령의 기화요 변역이며 간단없이 흘러 변화하는 삼보의 실상이요 무위이화다. 처음도 끝도 없는 무궁무궁한 흐름. 그것이 생명이니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숨이다.

바람과 물에 부쳐, 삼보에 부쳐 삼풍참사에 희생된 혼령들께 부디 한을 거두시어 수이 삼도천 건너시라 여기 고개 숙여 이배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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