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과 삶의 젖줄 양자강을 가다/대계문화 발원지 삼협,유비·제갈량 무용담 가득/이곳도 개발의 손길… 천혜경관 좀먹어 안타까움중국인들은 양쯔(양자)강을 장강, 그것도 멋들어지게 만리장강이라 부르기 좋아한다. 내륙의 칭하이(청해)성에서 발원해 상하이(상해)까지 굽이굽이 흘러가는 장강의 길이는 장장 6천8백여. 만리라는 중국인의 형용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장강유역은 중국의 역사와 문명이 그대로 살아숨쉬는 현장이다. 그중에서도 쓰촨(사천)성 봉절현의 백제성에서 후베이(호북)성 이창(의창)시 남진관에 이르는 1백92의 삼협은 대계문화라 일컫는 중국 고대문화의 발원지다.
삼협은 구당협 무협 서릉협의 장강 3협곡을 일컫는다. 중국최대 역사라는 삼협댐 건설로 또한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삼협이지만, 중국인들에게야 삼황오제 시대 이래로 마음의 고향이었다.초사의 굴원과 왕소군의 고향이 여기에 있다. 유비 장비 제갈량의 무용담과 지략이 곳곳에 배어있는 삼국지의 실제무대이자, 이백 두보 백거이가 시심을 누르지 못했던, 웅장미로 대변되는 중국적 자연경관의 대명사가 바로 삼협이다.
장강에 최초로 건설된 댐인 갈주댐에서 삼협댐 건설공사가 한창인 삼두평에 이르기까지의 60여는, 통상 장강상류쪽의 구당협에서 시작되는 삼협여행(통상 일주일이 걸린다)의 종착점 서릉협의 끝부분이다.
장강의 급격한 굽이굽이가 일순 완만해지고 거친 물결도 잦아들어 강물폭이 대해처럼 넓어지는 남진관은 삼협여정의 마지막 경관이다. 기슭의 산등성이에는 유비가 쌓았다는 성채의 흔적이 남아있고 「북치는 장비상」이 시선을 끈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물살은 험해진다. 카스트지형이 만들어놓은 용동들이 우측으로 눈에 들어온다. 세 신선이 놀고 갔다는 삼유동등 삼협강안에는 이런 석회동굴이 2백여개나 있다. 늦봄인데도 강안에 수백씩 가파르게 치솟은 산등성이와 그 사이를 치돌아 흐르는 깊이를 알수 없이 짙푸른 암록색 강물에서 피어오르는 강안개는 추위를 느끼게 한다. 삼협을 일러 「보이는 산과 물, 경치 하나 돌 하나가 그대로 모두 시요 그림」(일산일수 일경일물 무불여시여화)이라 했지만, 동양산수화의 원형이 바로 여기라는 실감을 갖게하는 산의 모습과 강물의 흐름이다.
차마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있을까 싶을만큼 험하고 웅장한 이 곳에도 개발의 손길이 미쳐온다. 남진관에는 관광용 케이블카가 가설돼있고 지난해말 시작됐다는 의창―우한 고속도로 공사가 다소 흉물스럽게 진행되고도 있다. 삼두평에 이르기 조금전에는 삼협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큰 사찰인 황릉묘가 강 오른쪽에 해발1천높이 우산아래 자리잡고 있다. 춘추시대에 지었다는 황릉묘는 제갈량이 병사를 이끌고 이곳을 지나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을 재건한후 「황릉묘기」를 남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삼두평에서 앞으로 나아가면 장강이 낳은 최고미인 왕소군의 유택이 있고, 굴원을 기리는 사당인 굴원사가 나온다. 굴원사는 삼협댐 건설로 97년이후 이전될 예정이라 한다. 이곳을 거슬러 이백의 시 조발백제성으로 유명한 백제성까지, 삼협의 경관과 사연은 끝없이 이어질듯 하다.<삼협=하종오 기자>삼협=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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