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지방선거가 끝난뒤인 1956년 9월6일 낮 경무대(현 청와대) 뜰에는 중절모를 쓴 50여명의 신사들이 모였다. 잠시후 이승만 대통령은 대뜸 『당신들 누구요? 무엇하러 왔소?』라며 쏘아붙였다. 한 대표가 이번에 당선된 서울시의원들이라고 소개하자 이대통령은 『공산당의 위협으로 어려운 때 나와 정부를 욕해서 당선된 사람들 아니오? 잘들해보시오』라고 한뒤 들어갔다.당시 자유당은 서울시의회만은 꼭 장악하기 위해 후보 등록방해등 온갖 불법을 자행했으나 민심이 등을 돌려 시의원정원 47명중 야당인 민주당 40 친야 무소속 5, 자유당과 농민회가 각 1명으로 참패, 수도의회를 빼앗기자 이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것이다.
지방선거의 참패쇼크에 이은 삼풍백화점붕괴참사로 청와대·정부·여당은 실로 참담한 지경에 빠졌다. 그들뿐인가. 온국민의 가슴이 무너지고 가슴이 뚫린 것이다. 그토록 내세웠던 개혁으로 없어진 것으로 알았던 부정, 탈법, 부패가 빚어낸 이 사건으로 국민이 받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분노와 슬픔, 허탈감은 무엇으로 달래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국민은 관의 부패, 악덕업자들의 부정, 양자간의 야합에 의한 한국병의 원인을 숙지하고 있었고 정부의 성과주의와 일방통행식의 형식적인 개혁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위정자는 이를 외면했던 것이다.
여당의 선거대패는 전적으로 민심을 오판 내지 무시, 과소평가한 때문이다. 흔히 민심을 조변석개하는 뜬구름이요 고무풍선같다고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다. 민심에는 분명히 중심과 방향과 혜안이 있다. 정치란 사실 민심을 잡는 일이다. 민심을 무시하거나 교만해서는 안되며 약간의 업적으로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정치는 영락없이 실패하고 만다. 민심은 평소 반응이 없지만 한번 분노, 폭발하면 결과는 엄청난 것이다.
한마디로 선거참패는 정부여당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개혁의 독주, 일방통행식의 국정운영, 성수대교붕괴와 대구폭발사고에 대한 땜질식수습, 국민의 공감없는 정책추진, 그리고 대통령만 바라보는 눈치행정에 민심은 진작부터 흔들렸었다. 여당 역시 소수인 민주계가 주도하며 다른 계파들은 구경꾼이 되고 선거를 좌우하는 57%나 되는 20∼30대에 대한 대책없이 평상시의 총선방식으로 안이하게 치르면서 결국은 『민자당을 찍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오만한 자세가 패배를 자초한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선거참패와 삼풍사건을 계기로 강한 자성과 자책의 자세를 보이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특히 김대통령 자신이 「민자당에 무서운 채찍을 보냈다」「국민의 소리를 두렵게 알자」「부패척결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결의는 일단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나 새출발대오각성은 말로만으로는 안된다. 뼈를 깎는 실천적인 노력으로 국민의 멍든 가슴과 슬픔을 치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 성수대교사건 후 정부가 사과한 후 시설점검은 커녕 관계법정비 하나 안한 상태에서 아무리 개혁을 얘기한들 국민불신만 증폭시킬뿐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청와대와 정부와 여당이 썩을대로 썩은 한국병을 뿌리뽑기 위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은 청와대참모들로부터 민심을 정확히 보고 받고 국민이 모두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과 계획을 담은, 관의부패부터 척결하는 신개혁백서를 내야 한다. 또 정부는 삼풍사건에 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각부장관에게 전권을 주어 부정발본을 책임지우는 한편 당은 당내민주화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계파를 초월한 화합정치로 함께 고민하고 일하는 당이 되게 해야 한다.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때 국민은 뜨거운 박수와 신뢰를 보낼 것이다. 오늘의 민심이반과 국민의 허탈감 등의 원인은 모두 정부여당의 내부에서부터 찾아 처방을 마련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이제 국민은 김대통령과 청와대·정부·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 정면돌파나 깜짝 놀랄만한 중대발표·조치보다 겸허한 자세로 새로 벽돌을 공개리에 쌓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직언·진인들과 관련, 92년 12월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직전 가장 인상깊게 들었다는 레이건 시절의 군축국장을 지낸 켄 애델만(현재 칼럼니스트)의 충고를 떠올리게 된다.
『설령 나쁜 소식이라도 정확하게 민심과 국정의 문제점을 건의하고, 정부의 실수를 용기있게 바로잡으려는 사람을 소중하게 중용해야 할 것입니다』<이성춘 논설위원>이성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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