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설계… 기간짧고 사후변경 관행/시공… 능력도외시 “많이만 짓자”/감리… 준공용서류 도장찍는 역온 국민이 「삼풍악몽」에 가위눌리고 있다.
수년전 신도시와 서울강남지역 대형건축공사에 참여했던 S건설 박모(39·토목부장)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이후 잠을 설친다. 삼풍백화점과 같은 참사를 빚을 정도의 부실시공은 하지 않았지만 자재수급사정 때문에 일부 바닷모래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삼풍백화점붕괴 바로 다음날 신도시를 찾아 자신이 지은 아파트가 성한지 확인할 정도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백화점에는 가지마라』 『○○아파트는 값이 싸도 사지마라』는 말이 오가는등 「부실건물 리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외견상으로 멀쩡한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온나라가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국내 건설현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같은 노이로제는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건축물은 설계 시공 감리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국내 건설업체가 싱가포르에 지은 28∼73층규모의 4개동으로 구성된 레이플즈 시티는 설계에만 10년이 걸렸다. 건축물의 모든 밑그림을 그리는 설계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의 대형건물은 설계기간이 1년을 넘으면 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질만큼 설계기간이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설계를 맡고 있는 건축사무소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건축주들은 이들의 경쟁을 악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수준있는 설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6월말 현재 건축사 5천32명, 건축사무소는 3천15개로 건축사무소당 건축사가 2명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때문에 설계사의 의견보다는 건축주의 고집이 우선 반영되고 시공단계에서의 설계변경은 관행이 되어버렸다.
시공의 문제는 더 심하다. 장기간 해외 공사현장에 있다 최근 본사로 돌아온 모건설회사 간부는 『우리나라 건설현장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에서는 설계된 내용대로 건물을 짓기만 하면 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설계대로 시공할 것을 말하면 우선 동료직원이 뜯어말릴 때가 많다. 우리나라 공사현장이 부조리로 얼룩져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80년대말 이후에 지은 건축물들은 부실시공 가능성이 더욱 높다. 당시 1년에 지을 수 있는 국내 건설능력은 40만가구정도. 그러나 매년 60만가구이상이 건설됐다. 턱없이 부족한 능력으로 물량만 채워놓았으니 부실은 피할 수 없다.
이처럼 크게 잘못된 설계와 시공을 바로 잡아야 할 감리는 더 엉망이다. 민간공사의 경우 감리자는 공사발주자가 지정하도록 돼있지만 감리비는 시공자에게 떠넘기기 일쑤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감리자가 시공자로부터 감리비를 받고 있어 문제점을 캐내야 하는 감리의 역할은 이미 기대하기 어렵다. 감리자는 준공허가를 위해 해당관청에 제출하는 서류에 도장찍는 역할로 전락해버렸다.
「삼풍악몽」은 부실설계―부실시공―부실감리의 삼박자가 빚어낸 것이다. 이 「3불」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는 언제라도 재발될 수 있다.<김동영 기자>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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