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고통 생각 젖먹던 힘까지”/피로누적에도 대원들 해머쥔 손 “불끈”/제보… 수색… 낙담… 하루에도 수차례/핸드백속 삐삐음 허탈도 잠시 또 출동『구조대, 구조대! A동 지하1층 식당가에 30여명이 매몰돼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빨리 출동바람. 오버』
2일 하오 2시께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현장에서 생존자 구조작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소방지휘본부. 사고 현장의 119구조대원과 나누는 무전교신내용이 떠들썩 하던 분위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했다. 지휘본부 관계자와 취재진, 실종자 가족들은 미화원 24명 극적 구조의 드라마가 재연되길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4시간이 지난 하오 6시께 현장접근이 어렵고 생존자 유무도 판단할 수 없다는 무전에 지휘본부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낙담의 빛이 스쳤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현장에서는 이같은 장면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결실을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구조대원들은 제보내용이 확인되지 않을 때 심한 허탈감에 빠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친 3일 상오 6시께 현장에서 콘크리트잔해 제거작업중이던 119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은 굴삭기를 이용,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큰 지하 1층의 천장 슬래브를 뚫고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상 1∼5층은 높이 30㎝∼2정도로 납작해져 있다. 아예 위 아래층이 붙어있는 곳이 많지만 1명이 겨우 기어다닐 수 있는 공간도 보인다. 이 때문에 사고현장 주변에서는 『생존가능성이 없다』는 비관론과 『생존가능성이 크다』는 낙관론이 교차한다.
지상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든 상관없이 구조대원들은 지하의 작은 공간을 비집고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혹시라도 살아 있을 귀중한 인명을 찾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A동 지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곳곳에서 구조대원의 활동을 차단하고 있다. 절삭기로 철근을 자르고 해머로 콘크리트 더미를 깨는 몇 시간의 작업끝에 겨우 1∼2를 전진하지만, 다시 사방은 철근 콘크리트더미로 꽉 들어차 있다. 계속되는 화재로 인한 연기도 구조작업을 지연시키는 요인중 하나이다.
구조장비 부족도 구조대원의 발목을 붙잡는다. 산소호흡기는 물론 마스크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119구조대원중 한명은 교대없이 연일 계속된 구조작업으로 탈진, 앰뷸런스 신세를 져야했고 또 한 대원은 구멍을 뚫다 손가락을 절단당해 수술까지 받았다.
3일 새벽, 한국이동통신의 협조로 실종자 소유 무선호출기를 일제히 울렸다. 지하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은 청진기를 벽에 대고 「삐삐」호출음을 찾는데 촉각을 곤두세웠다. A동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B동 지하에서는 약한 삐삐음이 감지됐다.
『작업중지. 삐삐소리가 크게 들린다』 구조대원과 의료진이 탐사구멍으로 몰려들었다.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살아있으면 벽을 두번 두드리세요』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다.
부삽등으로 조심조심 흙을 퍼내 삐삐음의 발신지를 찾아냈다. 그러나 삐삐는 희생자의 유품으로 보이는 핸드백속에 있었다. 매몰 현장 지하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3일 상오 9시께 스낵코너가 있는 지하 3층 지역에서 외마디 탄성이 울렸다.
개미굴같은 땅굴을 좌우측으로 파들어 가던 구조대원들이 엿가락처럼 휜 철근사이로 여성용 구두 한짝을 발견한 것이다. 구조대는 앞을 가로막는 철근을 잘라내며 구두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철근을 걷어내자 건물더미에 깔려있는 여자의 다리가 보이고 이내 심하게 부패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구조대원들은 밤새 인근 여관이나 차안에서 새우잠을 잤다. 사고발생후 벌써 닷새째. 구조대원들의 얼굴은 피로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해머를 든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애타는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다.
또 한구의 시신을 발굴해낸 구조대원들이 한 숨을 돌리려 할 때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의 제보가 지휘본부에 접수되고 있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생사가른 몇발자국/외벽쪽·기둥밑 등 구출생존자 많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당시 건물안에 있었던 1천5백여명의 사람들은 사고직전 위치에 따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나눠 걸었다. 종이 한장차이로 생사가 갈린 것이다.
지상 5층 지하4층인 삼풍백화점에서 일단 지상2층 이상보다 1층이나 지하에 있던 사람들의 생존율이 높은것은 당연하지만 의외로 3∼4층에 있던 사람들도 가벼운 경상만 입은채 구조된 경우가 많았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완충작용을 일으켜 건물잔해에 부딪치지 않은 사람들은 안전할수 있었던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는 해체공법에 의한 자연붕괴처럼 무너져내려 일어난 것이어서 구조물이 없는 건물내부 중앙보다 건물의 외벽쪽에 있던 사람들이 무사한 경우가 많았다. 즉 건물붕괴시 중앙에 하중이 쏠려 단면적의 80%이상은 지하 3,4층까지 함몰됐으나 지하층 외벽쪽에 주차된 승용차에는 흠집하나 없었다. 실제 주차장에 있던 사람중 벽쪽에 주차해 있던 사람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지난 1일 지하3층 대기실에서 무사히 구조된 24명의 미화원도 다행히 대기실이 건물 북쪽 끝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했던 것이다.
또 구조물이 전혀 없는 지역보다는 벽쪽 기둥등 무게가 많이 나가는 구조물 주변에 있던 사람들중에서 생존자가 많았다. 기둥이 쓰러지며 벽이나 철제빔 냉장고등에 부딪쳐 파편을 막아주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바람에 생명을 부지한 사람도 있었다. 사고발생 5일째를 맞은 3일에도 구조대가 생존가능성에 희망을 걸며 기둥주변에서 굴파기작업을 계속하는 것도 이때문이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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