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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쌀 파동(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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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쌀 파동(장명수 칼럼)

입력
1995.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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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이 초반부터 파란을 겪고 있다. 비 내리는 동해항에서 이홍구국무총리까지 참석한 가운데 감동적인 환송식을 치르고, 쌀 첫회분을 실은 씨 아펙스호가 청진항을 향해 떠난 것이 6월25일인데, 북한이 그 배에 강제로 인공기를 달게 했다는 것이 파란의 불씨다. 정부는 쌀 2차분을 싣고 출발했던 배 3척을 긴급 회항시키고, 북한이 당국명의로 공식사과할 때까지 쌀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동포에게 쌀을 보낸다는 원칙에는 합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에 몇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우리 쌀을 주면서 북한에 끌려다니는 듯한 쌀 회담, 쌀을 받아간 후에도 대남비방을 멈추지 않는 북의 태도, 전모가 공개되지 않은 합의문등이 국민의 불만을 샀다. 인공기 게양소동은 그런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씨 아펙스호가 북한으로 떠나던 6월25일은 한국전쟁 45주년이 되는 날이고, 1950년 그날처럼 일요일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은 동해항의 환송식을 지켜보며 착잡한 심정을 달랬다. 6·25를 경험한 세대에게 그 동족상잔의 전쟁은 세월이 갈수록 용서하기 힘들고, 눈물 없이는 회상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전쟁을 일으켰던 김일성은 인민에게 수없이 약속한 「쌀밥과 고깃국」을 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쌀을 보내는 날, 전쟁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동해항 부두에서 통곡하는 실향민들도 있었다.

정부는 쌀회담에서 북측이 내항으로 우리 배를 인도하는 시점부터 양측 국기를 다 게양하지 않기로 구두합의했다고 뒤늦게 밝혔는데, 문서로 적힌 합의도 잘 안지키는 북한과 구두합의를 했다니 놀랍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난 며칠사이의 우왕좌왕이다.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이 벌어진 것은 6월26일 저녁인데, 왜 28일과 29일에 2차분을 보냈다가 긴급회항 시켰을까. 북한이 조선삼천리총회사 명의로 보냈던 첫번째 사과전통문을 정부가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29일인데, 왜 30일에는 당국명의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강경선회 했을까.

정부는 대북 쌀지원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새 장을 여는 쾌거라고 말해왔는데, 과연 그런 중대사를 얼마나 노련하게 치밀하게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북한은 30일 밤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위 고문명으로 「아래일꾼들의 실무적 착오」였다는 사과문을 보내왔다. 사과를 받아들여 쌀을 계속 보내더라도 좀더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었으면 좋겠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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