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달 27일 난생 처음으로 투표다운 투표를 해보았다. 지난해 3월 서울에 왔으니까 9개월만에 투표를 해보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4개선거가 동시에 실시된 탓에 나는 한번에 네번 선택을 하는 겹치는 행운까지 누렸다.물론 북한에 있을 때도 선거를 했다. 그러나 이는 선거가 아니었다. 그저 찍으라는 사람을 찍는 기계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거기에다 나는 북한에서 가장 최근에 선거가 있었던 93년 10월에는 북한을 탈출, 남한에 오기 위해 중국대륙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북한의 기준에서 보면 정치범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강서구에서 해본 투표는 호기심 바로 그 자체였다. 비밀이 보장된 투표소에 들어가 여러 명의 후보중 한명을 골라 한표를 행사하는 것은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우선 서울시장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찍었다.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등은 잘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경력을 보고 자유롭게 찍었다.
더욱 감격적이었던 것은 개표결과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내가 찍은 사람이 몇표를 얻고 또 당선되는지, 낙선되는지를 밤새 지켜보는 것은 신기하기만 했다. 새벽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런게 바로 민주주의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기가 찍은 사람이 시장이 되고 구청장이 되면 자기자신이 바로 주인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같았다.
나는 투표를 하면서 내가 자유의 땅에 살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이같은 느낌은 내가 26년간을 살아온 북한에서의 생활과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북한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기권할 자유조차 없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을 경우는 물론 선거에 조금만 지각해도 정치범 취급을 당하게 된다. 선거에서는 찬성투표만 가능하고 반대투표는 상상도 못한다.
남한의 투표용지격인 선거표에는 당국이 지정한 한사람의 이름만 적혀있다. 여기에 찬성 또는 반대투표를 해야 한다. 반대표시를 하는 방법은 선거장에 비치돼 있는 검정펜으로 후보자의 이름을 긋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찬성이다. 북한에서 검정펜을 들어 반대표를 던질 사람은 결코 없다. 정치범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검정펜을 들어 후보자 이름에 검정칠을 하는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검은칠을 의미한다.
나 자신도 북한에서 투표장에 들어가면 긴장감부터 느끼곤 했다.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다. 북한사람들이 차라리 선거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찍고 싶은 사람을 찍지 못함은 물론 잘못하면 선거때문에 신세를 망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투표를 하며 새삼 느낀 것은 자유로운 세상이 좋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아봐야만 자유의 소중함을 안다는 얘기가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된 지금 자유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북쪽에서 아직도 자유의 맛을 모른채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이를 알게 해줄 방법은 정말로 없을까.
평생 처음 해보는 자유세계의 선거는 나에게 많은 감회를 주었다.□약력
▲68년 평양시 강동군출생(27세) ▲평안남도 성천고등중학교졸업 ▲평성공업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평안남도당 3대혁명 소조원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홍콩을 거쳐 귀순 ▲농협중앙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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