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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반응(삼풍백화점 붕괴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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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반응(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입력
199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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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사고백화점」인가/“이젠 분노하기도 지쳤다”/우리사회 안전한곳 도대체 어디있나『……』

국민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는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이제 분통을 터뜨리기에도 지친 모습이다.

국민들은 이번 사고도 여느 대형사고처럼 인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탈감속에서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다리가 무너지고, 지하철 공사장이 폭발하고, 백화점마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마당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전날밤부터 이미 건물벽에 금이 가는등 사고의 조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측이 버젓이 영업을 계속한 사실에는 「우리사회가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가」라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된다. 끊임없이 대형사고가 이어졌지만 끝내 고쳐지지 않은 이러한 사고불감증에 국민들은 『다리와 건물만 무너져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양심마저 무너져 내렸다』고 한탄했다.

이번 사고도 앞서 일어난 여느 사고처럼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다는 보도는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부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주부 박경아(30)씨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온 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을 뿐이다. 우리 국민이 지금까지 자랑해 온 한강의 기적이 고작 이런 부실사회 건설이었는지 허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태관(32)씨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사회 어느 한 곳이라도 안전한 데가 있는지 두려운 마음뿐이다』고 털어놓았다.

교사 오선영(여·29)씨는 『성수대교붕괴, 대구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고로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또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다니 슬퍼할 힘도 없다. 이번 사고 역시 천재가 아닌 인재라니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줄 인간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제상(25·서울대 공법학과)군은 『외국인들에게 사고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됐다. 지금까지 숱한 사고이후 발표됐던 정부의 긴급대책이 사실은 무대책이었음이 증명됐다. 말로만 세계화를 떠들 게 아니라 안으로 우리자세를 가다듬는 일이 시급하다』고 흥분했다.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박명순(28)씨는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대충 빨리」증후군이 대형참사를 잇달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장 사고의 조짐이 보이는 모든 건축물들에 대한 안전점검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걸(67)씨는 『끝없이 일어나는 대형사고는 비단 건축물 뿐만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부실공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일러준다』며 『사회지도인사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PC통신에는 『해도해도 너무한다. 창피해서 한국에 산다는 말을 못할 정도다』 『이번 사고의 관계자에게는 엄벌에 처해 인재에 의한 대형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등의 분노에 찬 의견이 쏟아졌다.<최성욱 기자>

◎시민정신의 명암/20대청년 피투성이 구조작업/부근서 작업하다 달려와 2명 구해내고 한때 갇혀/아비규환 “나몰라라” 골프채·스카프 챙기는 사람도

아비규환 참사현장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작업에 나선 시민도 있었지만 불행의 틈에서 이익을 챙기는 시민도 있었다. 시민정신의 극단적인 명암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온몸이 떨렸지만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도 몰랐습니다』

삼풍아파트붕괴 당시 부근 아파트에서 인테리어작업을 하다 달려온 박근식(26·패밀리인테리어직원)씨. 그는 아파트 붕괴음을 듣자 『사람이 많이 다쳤을텐데』하는 생각부터 들어 무조건 현장으로 뛰었다.

무너진 콘크리트더미를 뚫고 아래로 내려가자 벽사이에 끼여 허리가 부러진 사람, 머리가 피투성이가 돼 숨진 사람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 전개됐다. 캄캄한 건물더미사이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지하는 아비규환이었다. 먼저 다리가 부러진 두사람을 밖으로 끌어냈다. 에스컬레이터에 다리가 끼인 30대 남자는 『약혼녀가 에스컬레이터옆에 끼여 있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의 신음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그가 남자 2명과 여자를 업어내고 다시 내려갔을때 출구가 이미 붕괴된 건물잔해로 막혀 버렸다. 『다시 나갈 수 있을까』 20여평의 지하에서 부상자들과 함께 있던 2시간30여분동안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구조대와 함께 다시 지상으로 나온 그의 청바지와 흰 티셔츠는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박씨가 어둠속에서 몸서리치던 그순간 지상에서는 그가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붕괴당시 폭풍에 날려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유명메이커 스카프를 줍는 40대 아주머니, 땅에 떨어진 가방을 줍는 20대여성, 후문에서 골프채를 66개나 챙긴 30대 남자….

시민정신의 명암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권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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