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저것이 무엇인가. 영화 촬영현장인가. 아니면 쇼 좋아하는 이 나라 정부가 최첨단 기법으로 일시에 폭파하여 파괴하는 외국인아파트인가. 아니야. 저것은 환상도 아니고 영화 촬영도 아니다. 저것은 백화점이다. 가장 최근에 가장 최고급 아파트 사이에 세워진 백화점이다.그 백화점이 무너졌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이것은 생생한 현실이다. 일시에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처참한 현장을 중계하는 저 방송은 생방송이다. 저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1995년 6월29일 하오6시에 일어난 실제 상황이다. 우리의 주부들이 무너져가는 슈퍼마켓에서 자녀들을 먹일 찬거리를 사고, 무너져가는 백화점에서 내 딸들이 구두를 사고 있었다는구나.
상오 10시께는 백화점에서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겠다고 대책회의까지 열었다는구나. 그놈의 회의. 이 사회에 만연된 대책회의. 회의는 춤추고, 무너져가는 백화점에서 사람보다는 물건이, 건물이, 돈이 더 중요했던 이 사람들은 무너져 폭발하기 일초전까지 물건을 담았다는 구나. 이것은 비극이다. 우리 스스로 만든 비극이다.
위험을 위험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정치가들은 항상 뉴스속에서 귀엣말을 하면서 늘 웃고 있구나. 무너져 가는 도덕과 붕괴돼가는 가치의 혼란속에 있으면서 그 위험을 직시하지 못한채 낙관적으로 괜찮다 괜찮다 하는구나. 신문은 이제 소금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던 신문도 이제는 짠 맛을 잃어 소금이 아니구나. 소금은 설탕이 돼서 달콤한 설탕같은 부수를 확장한채 자꾸자꾸 초콜릿처럼 찍어만대고 있구나. 무너져가는 윤전기속에서 신문은 찍혀가고 뉴스시간만 끝나면 온갖 쾌락을 선전하고 물질을 찬양하는 TV도 또한번 흥분하는구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어요. 무너져가는 텔레비전 영상기속에서 가수는 노래하고 룰라는 엉덩이 춤을 추고 있구나. 하느님을 찾는다는 종교도 무너져가는 성전속에서 할렐루야만을 외치고 있구나. 다리가 무너지면 다리 만든 사람 구속하고, 가스가 폭발하면 가스 만든 사람 구속하고, 백화점 무너지면 백화점 관계자 구속하면 그것이 다일까. 그것으로 끝일까.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우리 모두가 미쳐서 사람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고 사람보다는 물질을 더 사랑하며 쾌락을 위해 뱃속의 아이를 죽이고 돈을 얻기 위해서 음식 속에 방부제를 집어넣던 죄인아닌가. 어찌 무너지는 것이 백화점 뿐이랴. 저 무너져 내리는 거리, 무너져 가는 다리, 무너져 가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예고되고 있는 무너져 내리는 균열을 애써 못본 체 하고 있구나.
이 일을 어찌 할까. 저 죄없이 죽어간 주부들을 어이 할까. 그들은 붕괴되기 이틀 전 자기들이 좋아하는 시장 후보들을 표로 심판하였던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다. 한 가정의 주부가 아아, 생선 한 마리보다도 하찮은 존재였구나. 난 그 자리에 없었어. 난 29일날 오후 6시 정각에 그 자리에 없었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참 운이 없던 사람들이야.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이야. 사람들은 쉽게 체념하고 술을 마시는구나.
그러나 운명이여. 무너져 가는 것이 어찌 백화점 뿐이랴. 차라리 앞으로 보이는 처참한 건물의 모습은 그래도 다행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너지고 있구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생명경시의 풍조가 우리를 인간의 존재에서 무너져 내려 짐승을 만들고 있구나. 가정이 무너져 내리고 성소가 짓밟히며 신성한 것이 더 이상 신성한 것이 아닌 것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구나.
아아. 이 일을 어이 할까. 세월이여 우리를 망각의 늪으로 빠뜨려서는 안된다. 시간이여. 시계바늘을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 정각에 멈춰라. 그 현장에 없었다는 사람들이여. 이 무너져 가는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비를 그 현장에 없었다고 해서 피할 수 있었을까. 그대도 언젠가는 그 비를 맞을 것이다.
이것은 6·25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테러범의 폭파도 아니다. 이것은 가장 무서운 인간이 인간을 생명으로조차 인정치 아니하는 무자비의 학살현장이다. 이 현장을 바라보는 우리들이야말로 죄인이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죄와 벌」에서 전당포 주인을 죽인 라스콜리니코프가 거리의 창녀 소냐에게 『내가 이제 뭘 해야만 하는가』라고 묻자 소냐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진리를 선포한다.
『어서 일어나서 거리로 가서 네가 더럽힌 땅에 엎드려 입맞추고 그리고 온 사방 온 세상을 향해 「나는 살인죄를 범했다」고 소리쳐야 해』
이제 죄인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이야말로 더럽힌 저 땅에 엎드려 입맞추고 온 세상을 향해 통곡하여 소리쳐야 한다. 이것이 처참한 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뼈저린 교훈이다. 만약 이번의 참극조차도 나하고 상관없는 그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떠넘겨 버릴 때 가까운 시일 안에 더 참혹한 비극이 우리에게 밀어닥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인가. 1995년 6월 29일의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소설가>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