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구통치연합이 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국민생활 향상과 국가발전을 위해 특정 지역과 인물을 넘어서 폭넓은 신통치연합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4대 지방선거는 권력의 분권화 및 지역화와 정당의 파편화및 다당제 출현을 초래하여 분열과 대결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결코 이번 선거의 의미를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34년만에 부활한 이 지방자치는 한국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큰 이정표임에는 틀림없다. 시장, 도지사, 군수들은 오가겠지만 그들을 뽑는 제도는 길이 남을 것이며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시킬 것이다.
이번 선거는 권력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첫 출발이다. 기초및 광역단위에서 자치를 목적으로 했던 이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다시 표출했고 중앙의 정치지도자들이 출신지역별로 권력투쟁을 나타냈다. 서울시장선거에서 언론, 특히 TV가 세 후보들간의 토론을 크게 부각시킨 것은 지방정치를 압도했고 결과적으로 기초단위에서의 쟁점을 실종시켰다. 전국이 1일생활권으로 변한 정보화시대에서 이같은 결과는 불가피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당분포가 파편화하여 양당제도가 다당제도로 전환하고 있는 점이다. 광역단체장선거에서 여당은 오로지 3분의 1만 차지했고 기존 정당들의 지지기반도 다시 영남, 호남 및 중부로 분화했으니 이 지역화현상은 차기 총선에도 반영될 것이다. 특히 인구 1천2백만의 서울에서 민주당의 조순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정국개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일 민자당, 민주당및 자민련이 선거후에 정계를 재편한다면 정당구도는 4분5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추세가 내년 총선까지 계속된다면 제15대 국회도 다시 여소야대정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렇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정치상을 보면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 미셀이 「지휘자는 바뀌어도 음악은 변함이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정당에서는 지휘자도 바뀌지 않아 「3김」시대가 재현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행동은 여전히 인신공격, 고소, 공문서 폭로등으로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면은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 지역및 인물중심의 정당을 정책및 이념정당으로 발전시키는데는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책임도 큰 것이다. 정당이 감정싸움을 지양하고 이익및 가치에 대한 경쟁을 하도록 유권자들은 물론, 언론이 여론을 형성해야 하며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지도자들을 골라야 할 것이다.
긴 안목으로 볼 때 이번 선거의 문제점들은 선거를 몇 차례 더 겪어야만 극복될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적지않은 교훈을 얻는다. 세계화하고 있는 과학기술, 경제 및 민주주의시대에서 한의 정치는 점차로 그 한계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이 가장 강력한 일체감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할 때 그것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다. 명분이 현실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냉소와 불신만 자아내기 때문이다.
힘이 지역별로 분산하면 할수록 권력독점은 불가능하며 당사자들은 공동이익간에 연합을 구성해야 한다. 갈등하는 집단과 조직간에 타협과 합의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과정의 핵심이라면 연합구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록 출신지역이 다른 집단들 간에도 이익조절을 위한 연합은 실현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신통치연합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생활안정, 국가경쟁력강화, 통일대비등은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와 안정된 연합을 성취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정당들도 특수주의적 지역 및 인물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세력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에 근거하여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는 급속한 산업화를 겪고 밖으로는 탈냉전기의 경제전과 김일성사후 불확실해진 북한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누가 대권을 잡느냐에 못지 않게 노사관계와 통일준비와 같은 난제를 어떻게 푸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 공통과제에 대하여 새로운 통치연합을 결속하여 한국정치도 경쟁력있는 양상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6·27선거결과는 이것을 재촉하고 동시에 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이 연합구성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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