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8월 각 신문은 사회면 1단 혹은 2단 기사로 청부폭력 사건을 보도했다. 남편으로부터 간통혐의로 피소된 유모여인(39)이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 5명에게 『남편을 위협하여 위자료 5억원을 받아주면 대가로 1억원을 주겠다』며 폭력을 청부했고, 그 남자들이 남편을 납치 폭행했다는 기사였다. 그 내용은 서울 서초경찰서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발표한 것이었다.그로부터 5년이 흐른 95년 6월 24일자 신문에 다시 그 여성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내용은 그가 국가와 7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는 것이다. 그 여성은 청부폭력혐의로 기소됐으나, 92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후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찰서와 그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었다.
서울지법은 23일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는 피의사실을 공개할 수 없는데도 이를 언론에 공개, 보도되게 함으로써 유씨의 명예를 훼손한 국가는 1천3백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언론사는 수사기관 공식발표를 진실이라고 믿었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배상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발표내용을 과장하여 「춤바람 주부」등으로 묘사했던 2개 언론사에 대해서는 각각 9백만원, 7백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형법 제126조는 『기소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한 때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5년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수사결과를 기소전에 공식발표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독재정권아래서는 수사기관들이 과장 또는 조작된 피의사실을 발표하여 언론에 보도되게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고, 그것을 고의적으로 악용하기까지 했다.
새정부 출범후 검찰은 탈법적인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개선해 나가기로 방침을 세웠으나,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게 된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후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명예와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반발은 날로 거세질 전망이다.
위자료를 더 받기 위해 남편을 청부폭행했다고 신문에 났던 우씨는 5년의 법정투쟁끝에 국가와 언론사로부터 2천9백만원의 배상금을 받게됐다. 수사기관은 물론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은 언론기관들도 그 5년의 고통을 되새기며 자신의 업무가 지닌 「칼을 두려워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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