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의 지방자치 유권자들 적극나서야아침에 대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후두둑 떨어진다. 아침 일찍이, 또는 지난밤에 누군가가 문틈에 끼워놓은 후보자들의 명함판 홍보물이다. 대문앞이 갑자기 어수선해진 느낌이어서 잠시 신경이 거슬린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고나서부터 쓰레기 노이로제에 걸려있던 터라 더욱 그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계단을 내려가며 차례로 한번 훑어본다. 천연색 사진속의 인상들…. 다들 한결같이 사람좋게 미소를 띠고 있다. 뒤쪽으로 넘겨 이력을 한번 살펴본다. 「○○지역 문화발전을 위한 시민모임 추진위원」 「한국서예협회 ○○지역 협회장」 「○○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 「전국부동산중개인 ○○지역 협회장」…. 그런가 하면 「○○국민학교 ○회 졸업생대표」라고 박아놓은 것도 있고, 심지어 「합기도 6단」이라고 밝혀놓은 명함도 있다. 그런 허장성세가 밉기는 커녕 오히려 애교스러워 보인다.
하오3시의 시의원 합동유세장. 어린이 놀이터 모래판에는 햇볕이 뜨겁다. 꽃양산을 받쳐들거나 모자를 쓴 사람, 신문지를 말아쓴 사람. 그래봐야 한 이백여명. 대부분이 뚱뚱한 부인네이거나 오십줄의 아저씨들이다. 그러나 결전의 고지를 향해 시계바늘은 숨가쁘게 흘러가고 후보와 운동원, 자원봉사대는 한창 마음이 바쁘다. 막판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한 후보는 안타깝게도 목이 쉬었다. 쉰목소리로 열심히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격려성 박수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곳에서 몇걸음 걸어나오면 모두가 무덤덤하다. 지상군의 이런 「작은 전투」보다도 사람들은 오히려 서울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려한 공중전에 더 흥미가 쏠리는 눈치다.
앞머리가 훤한 오십대중반의 아저씨를 붙들고 물어본다.
『여기 시장후보중에서 누가 제일 낫습니까』
그는 약간 경계하는 눈치로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신통치 않게 대답한다.
『몰라요. 누가 나왔는지. 뭐 다아 그게 그거지요』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가 나오자 단연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자기가 선거권도 없는 이웃집 사정에 더 훤한 듯했다. 텔레비전의 위력이다.
그의 고민은 정작 그 자신이 찍을 권리가 있는 이 지역의 단체장과 후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서울시장 후보와 그들의 배후에 버티고 있는 3김에 대한 선호도밖에 없다. 3김에 대한 선호도는 출신지역에 따라 생래적으로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제 정당은 도덕이나 이념, 진보나 보수에 의해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있을 뿐이다.
5·16쿠데타에 의해 뿌리 뽑힌지 35년.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민주주의 꽃이라는 지방자치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연히 춤이라도 추어야 마땅할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왜일까. 신문방송의 연일 보도에도 불구하고 좀체로 신명이 달아오르질 않는다.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구청직원은 오늘 어디서 무슨 유세가 있는지 공책을 한참 뒤적여서야 알려준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껄끄럽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란 어리석은 대중의 정치, 즉 「중우정치」라고 한 어떤 철학자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민주주의에도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언제 슈퍼마켓 주인아저씨, 복덕방 할아버지, 경비아저씨, 전직 소방관아저씨 우리의 이웃으로 또 우리의 대표로 뽑아본 적이 있었는가. 우리가 언제 우리의 대문빗장을 열고 우리가 한 지역의 주민공동체라고 느껴본 적이 있었는가.
이제야 겨우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후보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모자라는 부분은 우리 자신이 채워주면 되지 않겠는가. 지역의 영주들이 기득권을 주장하며 할거를 한다지만 어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신명들 좀 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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