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음비법)의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의 관련부처간, 업계와 관련부처간의 이견이 표면화하고 있다. 문화체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정안의 일부가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데 그것이 관련부처간의 조정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듯 하다.문제의 핵심은 「비디오물」의 개념규정에 있다. 현재의 법은 「비디오물」을 「영상(음의 수반여부를 가리지 않는다)이 유형물에 고착되어 재생될 수 있도록 제작된 물체(영화필름 및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것을 제외한다)」로 정의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영화, 컴퓨터 프로그램등 제외대상을 삭제하는 대신 비디오물을 「녹화된 테이프및 디스크,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CD롬이나 비디오 CD, 대화형 CD같은 새로운 영상 소프트웨어가 비디오물에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문체부에서 마련한 개정안의 의도는 현행법으로는 심의대상으로 규정하기가 애매모호한 전자게임같은 새 영상물을 심의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같다.
개정안에 대한 정보통신부와 일부 업계의 반발은 이렇다. 디스크를 확대해석하면 영상을 담고 있는 CD롬이나 플로피 디스크및 하드 디스크까지 포함될 수 있으므로 이는 자칫 소프트웨어 전체를 가리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서 새로 출현하고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영상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법의 적용을 받을 경우 앞으로 어떤 형태든간에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은 모두 비디오물로 정의되어 공륜의 심의대상이 되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차원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멀티미디어나 소프트웨어산업이 비디오물을 만들어내는 오락성위주의 산업으로 유추해석될 소지를 남기게 되어 소프트웨어의 이미지를 크게 추락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도 지적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말하는 비디오물에 대한 정의가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정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산업적 목적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운영서, 설계서, 기술서등 윤리적 심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까지 포함되는 문제를 낳기에 정보통신부의 주장도 분명히 일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
문체부의 개정법이 이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자게임등 오락용 신영상물에 대한 윤리적 규제를 겨냥한 것이라면 비디오물의 정의는 그대로 두되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의 발달에 저해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련의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내용물을 기준으로 해서 심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비디오물의 카테고리를 명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984년에 마련되어 1994년에 개정된 영국의 비디오저작물 관련 법안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법안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테이프나 콤팩트 디스크, 플로피 디스크, 카트리지등에 고정되어 있고 동영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비디오물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비디오물을 원칙적으로는 영국영화심의위원회(BBFC) 심의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몇 가지 카테고리의 영상물을 심의에서 제외함으로써 현재 우리나라의 영상및 음반법 개정안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피해가고 있다.
즉 정보제공, 교육,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나 스포츠, 종교, 음악과 관련되는 비디오물은 심의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들이 그것이다. 또한 전자게임등 신영상물의 경우는 법적 기구의 심의와 업계의 자율심의를 혼합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법적 심의의 대상이 되는 게임물로는 인간의 성적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 인간이나 동물에 대한 심한 폭력, 기타 범죄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의 묘사등을 포함하고 있거나 그것을 조장 내지는 자극할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외설, 폭력적인 게임물은 법적 심의의 대상으로 하되 나머지는 업계의 자율심의로 등급심의를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적 심의대상이 되는 경우 게임의 풀이가 복잡하고 하드 웨어도 각각이므로 필요한 자료및 게임 풀이자와 하드웨어도 업자 자신이 제공하도록 까다롭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분명 소프트웨어산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퇴폐적이고 불건전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공륜의 새 영상물 심의방식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우선 윤리적 문제가 야기되지 않는 정보, 교육, 훈련, 산업용 프로그램은 심의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또한 연간 수천편씩 쏟아지는 물량을 법적 심의기구에서 일일이 해낸다는 것은 한계가 있고 언젠가는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업계가 자리잡혀 있지 않아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앞으로 점차 자율심의를 도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여러 단체로 흩어져 있는 관련업체들이 스스로 통합하여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담당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서울대교수·언론학>서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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