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수습이어 인질사건 대화로 풀어/대권후계자 정치적 입지 굳혀빅토르 체르노미르딘(57) 러시아총리가 체첸게릴라들의 부덴노프스크 인질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보리스 옐친정권의 「해결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흑해 휴양도시 소치에서 휴가중이던 지난달 27일 사할린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급거 모스크바로 귀환, 사태 수습을 진두 지휘한데 이어 부덴노프스크의 병원에서 일어날 뻔한 대참사를 대화로 막아냈다.
특히 인질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위기관리능력은 그간의 유약한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충분했다. 그는 옐친대통령의 강경진압책이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만 남긴채 실패하자 직접 전화통을 붙잡고 체첸게릴라 지도자인 샤밀 바사예프와 담판을 벌였다. 그는 동시에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각료들을 독려, 인질석방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도록 했고 크렘린의 강경파를 설득, 체첸게릴라들의 요구조건인 러시아의 체첸공화국내 군사활동 중단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같은 그의 행보는 그가 옐친의 「후계자」자리를 굳힌 것이 아니냐는 추측마저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의 존재를 무시해온 몇몇 정치적 야심가들도 이제 시각을 바꾼듯하다. 그를 향해 정치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보리스 표도로프 전재무장관은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인질극을 해결하기위해 체첸게릴라들과 TV생중계 협상을 벌인 것을 두고 역겨운 행동이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오히려 체르노미르딘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있는 것같다.
92년 12월 15일 옐친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발탁된 그는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사 사장과 에너지담당 부총리를 역임한 중도보수 성향의 경제관료이다. 그는 러시아의 주요외화 수입원인 석유가스업계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보수 관료층의 지지도 높다.
지난 61년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91년 러시아연방 출범이후에는 어느 정당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지내오다 최근에야 옐친대통령의 친위정치세력인 「나쉬돔 로시야(우리집 러시아)」라는 중도우파 정치세력을 조직해 이끌고 있다.
그는 그동안 대권에는 욕심이 없는 인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옐친이후의 「차기」를 바라볼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옐친대통령도 그를 자신의 정권을 연장시켜줄 「구원투수」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가 「나쉬돔 로시야」를 이끌고 연말로 예정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다면 옐친의 후계자로 대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구소련의 레닌에서부터 현 러시아연방의 옐친에 이르기까지 대머리와 머리 숱이 많은 인물이 교대로 집권했으며 공통적으로 영어를 못했다는 점을 들어 체르노미르딘의 후계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러한 분석이 우연의 일치로만 끝날 것인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