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 완벽… 내용상 불법화폐/시민 확인의무 법적근거 없어한은은 조폐공사에서 분실한 1천원권지폐 1천장이 불법유출된 것이기는 하나 형식상 완벽한 완제품이기 때문에 유통을 막을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이의 처리방법을 놓고 고심중이다. 특히 이처럼 국가공권력의 누수로 인해 시중에 잘못 유통된 돈의 경우 보존가치가 높아 화폐수집상들 사이에 고가에 거래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법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에 의하면 돈을 만드는 조폐공사가 한국은행총재의 직인과 일련번호까지 찍힌 완제품을 분실 또는 도난당했을 경우 이 은행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일단 지폐 및 주화가 돈의 가치를 지니려면 한국은행을 통해서 시중에 유통돼야 하기 때문에 조폐공사에서 유출된 돈은 형식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불법화폐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현행 상법상 유가증권의 효력은 외형뿐 아니라 발행절차가 적법해야만 인정된다』며 『이에 비춰 이번 사고화폐는 돈으로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게 한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돈은 한국은행총재의 직인이 찍혀 있고 일련번호까지 인쇄된 완제품이기 때문에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통에 전혀 하자가 없다. 또 시민이 돈을 사용할때 일련번호를 일일이 확인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이 돈이 유통되는 것을 공권력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근거도 없다.
위폐에 대해서는 소지자가 고의로 유통시킬 경우 처벌규정이 있지만 이번에 유출된 1천원짜리 1천장은 그대로 유통시켜도 불법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이 돈이 유통되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 없다면 결국 이 돈은 공권력의 누수로 인해 잘못 유출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지폐로 간주돼 보존가치가 높아 화폐수입상들 사이에 상당한 거액에 매매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50∼60년대 인쇄기술이 부족할때 발행된 지폐 가운데 일련번호가 빠졌거나 그림 또는 선이 잘못 인쇄된 손지가 일부 있었으나 이번처럼 외형상으로 완전한 화폐가 한은창구를 거치지 않고 빠져나간 예는 없었다.
한편 재경원과 한은은 일단 이 돈이 회수되면 일단 폐기처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국은행 김정홍 발권부장은 『문제의 1천원짜리 1천장은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시중은행등을 통해 회수한뒤 폐기처분할 방침』이라면서 『그러나 이 돈이 완제품으로 시민들이 확인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유통을 법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선의취득 유출지폐 교환 가능/은행창구서… 회수즉시 폐기
한국은행은 조폐공사에서 불법 유출된 1천원권을 유통과정에서 선의로 취득한 소지자는 은행창구에서 사고 화폐를 정상 화폐와 교환할 수 있다고 15일 밝혔다. 한은은 이와 관련, 한은의 본·지점 및 일반은행 전점포에 이날부터 「불법 유출된 1천원권 발견시 협조 안내문」을 게시하도록 지시했다. 한은의 문학모 이사는 『사고화폐는 화폐발행권자인 한국은행의 창구를 통해 적법하게 발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폐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며 『회수 즉시 폐기처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이사는 그러나 『선의의 소지자는 은행에서 정상화폐와 교환할 수 있어 전혀 피해가 없다』고 말했다.
◎범인색출 넘는 「보안사정」 의지/검찰 「지폐유출」 수사 입장/“위폐범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사건” 충격/관련자들 직무유기 등 철저한 추적 나서
옥천조폐창 지폐분실사건에 접한 검찰은 충격속에서도 조속하고도 철저한 수사만이 건국이래 최초의 지폐 분실사건이 가져온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 우선 사건경위와 범인을 찾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국가경제의 근간인 화폐제조·관리업무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이 드러남에 따라 실추된 정부의 공신력을 사후약방문식 수사로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자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도언 검찰총장이 14일 청주지검에 수사를 지시하면서 『국가경제의 기초를 흔들 우려가 있는 사건』이라고 규정한데서 나타나듯이 검찰은 「절대적 보안」이 요구되는 발권시설에 빗장이 풀려 있었다는 점에 경악하고 있다.
경제의 혈맥인 돈을 찍어내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신뢰성에 의심을 받는다면 정부발행권을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통화신용제도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점에서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 조폐창은 그 어느 곳보다도 철저한 보안이 지켜져야 할 곳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발권과정의 보안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인적관리에도 문제가 있음이 여실히 증명됐다.
검찰은 결국 「절대적 보안」이 무너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가려내 수술하지 않고서는 제2의 대량 화폐유출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검찰의 상황판단은 이번 사건 수사가 결코 범인을 가려내는 소극적 차원에서 머물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보안과 경비가 최고 국가 고급기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폐창에서 이런 사고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위폐사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며 『보안체계 관리실태 전반을 조사해 관련자들의 직무유기등 법적책임을 철저히 묻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14일 하오 오세민 전 조폐공사사장에게서 지폐유출사건에 대한 대처방안을 문의받고 관계요로를 통해 전말을 파악해 본 결과 사실로 확인되자 청주지검에 특별수사반을 편성, 즉각 현장수사에 착수하는등 발빠르게 행보를 보임으로써 강도높은 「보안사정」이 뒤따를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관련, 검찰은 조폐창이 지폐분실사고를 지난 9일 발견하고도 자체조사를 이유로 4일동안 은폐한 동기와 조폐창 규정에 따라 철제함에 보관하는 보충은행권을 매일 확인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일 점검한 뒤 7일이 지나서야 보충은행권 부족사실을 발견하고서 다시 4일간이나 자체조사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허비한 뒤에 상부에 보고했다는 사실은 조폐창 직원들의 근무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져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내부인사 수명이 조직적으로 공모, 대량유출을 위해 시험적으로 절도를 시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분실사건에 직접 가담한 직원뿐 아니라 보안관리 소홀등으로 결과적으로 유출을 방조한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김승일 기자>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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