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이사장이 지방선거유세에 나서겠다고 공식발표하여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마디로 이를 보는 국민의 심경은 지극히 착잡하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이 깨지고 있는데 대한 허탈감과 실망감 때문인 것이다.국민은 지난 92년12월19일 새벽에 있었던 「감동적인 사건」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세번째 대권도전에 실패한 김이사장이 「겸허한 심정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국민은 민주발전을 위한 결단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봄부터 일부지역의 지방선거후보공천에 개입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기 시작하자 국민은 깊은 당혹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김이사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선거권·참정권을 보장받고 있고 당원이므로 연설원으로 등록하여 지원유세, 즉 정치활동을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국민에 대한 약속위반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국민은 은퇴했다는 김이사장이 정치성발언을 할 때마다 그의 진의를 주목했었다. 논란을 일으켰던 이른바 지역등권론만 해도 그렇다. 모든 지방이 권리, 혜택, 이익, 발전면에서 고르게 누리자는 것이라지만 선거를 앞두고 강조하는 것은 지역할거주의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번 지방유세에 나서는 것이 당내사정과 후보들의 요청도 있었으나 정부가 김인곤 의원을 구속하고 한국통신노사문제로 긴장을 고조시키는등 자유로운 선거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이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탓만으로 정계은퇴약속을 번복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도대체 이번 선거가 어떤 선거인가. 대권과 정치판세를 겨루는 대통령·국회의원선거가 아닌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 아닌가. 더구나 35년만에 우여곡절끝에 겨우 완전한 지방자치시대를 여는 선거인 만큼 지방자치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도 중앙정치의 오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김이사장 스스로가 「미스터 지방자치」라고 자부했듯이 지난 30여년간 지방자치의 부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만큼 이번 선거가 정당간의 대결과 권력의 경쟁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유세참가로 선거분위기를 과열시킬 여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김 이사장은 유세를 재고해야 한다. 국민이 92년의 은퇴약속과 오늘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정계일선으로의 복귀로 은퇴약속을 어길 때 국민이 얼마나 실망을 하게 될 것인지를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래도 정치활동을 재개해야 하겠다면 국민앞에 사과하고 앞서의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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