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 손쉽지만 걷잡을 수 없는 결과 초래 가능성/“자본재 수입줄여 경기안정” 절상기조 유지할 듯경상수지개선을 위해 환율을 절하해야 하나 절상해야 하나.
「국제수지 적자관리」가 하반기 경제운용의 최대과제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환율정책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물론 「환율절하→수출증대→경상수지개선」이 교과서적 수순이겠지만 문제는 현 경제상황이 꼭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는 「환율절상을 통한 국제수지개선」이란 다소 「이색적이고 모험적인」정책으로 그 처방을 찾아가고 있는 듯 하다.
11일 재정경제원에 의하면 지난달말까지 경상수지 누적적자규모는 작년 총적자액(45억3천만달러)을 돌파, 50억달러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세라면 올 경상수지는 사상 첫「1백억달러적자」의 신기록까지도 예상된다.
경제정책의 「세마리 토끼」중 올해 우선순위는 물가→성장→국제수지 순이었고 물론 하반기에도 기조 자체엔 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물가와 성장의 선전과는 대조적으로 국제수지가 워낙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정부고위층도 「경상수지적자와 외채증가」에 큰 걱정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하반기 경제운용의 초점은 아무래도 국제수지개선에 집중될 전망이다.
적자개선의 가장 손쉽고 고전적 수단은 환율절하. 사실 경상수지적자가 50억달러에 이르고 뜻밖의 자본유입둔화로 종합수지마저 20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어 시장수급만 보면 환율은 절하되어도 한참 절하됐어야 옳다.
그러나 현재 환율(달러당 7백60원선)은 연말대비 3.5%나 절상돼있다. 아무리 달러약세로 심리적 원화절상요인이 크다 해도 환율이 이처럼 반시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정부의 정책의지를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추가절상은 힘들어도 기조만은 하반기까지 끌고가고 싶은게 재경원의 내심이다.
다소 생소하고 비교과서적이지만 「환율절상을 통한 경상수지개선」발상의 핵심은 투자억제를 통해 자본재수입을 줄이자는 것이다. 지난 4월말까지 총수입 4백16억달러중 자본재수입액은 1백66억달러로 원자재(2백8억달러)보다 작지만 증가율은 42%로 원자재·소비재를 압도, 전체 수입증가세와 경상수지적자확대 분위기를 주도했다.
자본재수입을 줄이려면 설비투자를 줄여야 하고 경기도 좀 진정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환율은 절하 아닌 절상으로 가야 한다. 이는 이미 외화대출축소등 설비투자억제방침을 밝혔던 정부의 경기안정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 설비투자진정을 통해 과열조짐의 경기상승을 다소 둔화시키면 물론 수출도 주춤해지겠지만 그보다 훨씬 큰 폭으로 자본재수입이 감소하고 결국 원자재·소비재 수요도 줄어 자연스럽게 경상수지는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다.
자칫 당장 적자해소를 위해 섣부른 환율절하책을 쓰다간 수출확대→설비투자증가→자본재수입폭증→경기과열·경상수지악화→외채급증의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재경원관계자는 『현 경상수지적자는 기본적으로 확장경기의 결과다. 경상수지개선을 위해선 설비투자가 주도하는 경기 자체를 손대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율절상으로 경상수지적자를 해소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정부가 이 방향을 택할 경우 ▲무역업계(특히 가격만으로 버텨오던 한계영세업체)의 큰 반발과 ▲단기적으론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지표상 부담을 이겨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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