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부정적이다. 이에 비해 북한과 미국관계는 진일보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제네바에서 북한핵동결에 서명했고, 이번에 또다시 콸라룸푸르에서 북한에 대한 경수로지원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연락사무소개설, 경제협력등을 예정된 수순으로 밟아나갈 것 같다. 한국이 그렇게 주장하던 한국형은 끝내 KEDO형 경수로로 명칭이 바뀌고, 부대시설비까지 지원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한국이 또한번 소외되는 것을 보면서 앞과 뒤가 다른 대미외교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년의 북·미제네바 핵합의때 한국이 완전히 배제된 것을 보고는 「제2의 을사보호조약」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하는 말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대표단이 지금 미국을 여행중이고, 미국의 몇몇 대학총장이 북한방문길에 올랐다. 또한 빌 리처드슨의원(민주·뉴멕시코)이 북한과 서울을 차례로 다녀가면서 「당사자 대화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통일의 주역이 될 남북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북한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쌀 제공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일본을 통해서 간접응답을 해올 뿐이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재미교포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만난 북한사람마다 「김일성사망때 한국이 취한 자세가 섭섭하다」는 것이다. 다른 남북 현안은 대화를 통해서 풀어갈수가 있지만 그때 감정만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색관계는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서독은 75년부터 88년까지 동독주민의 생활개선을 위해 2백50억마르크(1조3천억원상당)를 지원했다. 그 돈의 일부가 동독의 재무장, 부채 상환, 당간부의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쓰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독정부는 아무 조건을 달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겠다는 데에는 절차보다 결과를 중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북한도 조건없이 받아야 한다.
오늘 남북한간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50년 불신의 골이 너무 깊게 패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제안도 오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만 전가해 민간교류의 폭이 넓어지지 못하고 있다. 통일로 가는 진정한 길이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 발전시키는데 바탕을 두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 북한이 왜 미국만을 상대하고 수교를 하려 하는지, 한국을 따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검토해볼 때이다. 미국과 북한의 행보에 더이상 한국이 소외될 수는 없다.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 창출해낸 두 당사자가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뜻과는 달리 미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과 북한의 외교승인시대는 곧 올 수밖에 없다. 남북한은 장기적인 「2국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남북한이 화해 교류 협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서 당국자의 큰 통일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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