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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 4개부문 우수상 수상작/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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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 4개부문 우수상 수상작/심사평

입력
199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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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혼” 한국미술 내일을 연다/작품세계 다원화… 선별 어려움/차별성·개별성 등 뛰어나/전진적 자세는 다소 부족한국일보사가 95미술의 해를 맞아 제정한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을 통해 우리 미술의 내일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작가들이 탄생했다. 지난해 개인전을 가진 45세미만의 작가를 대상으로 팸플릿을 제출받아 진행된 1차심사를 거쳐 한국화, 서양화, 조각·설치, 판화등 4개 부문에 초대된 작가는 모두 25명. 이들이 2점씩 제작, 출품한 작품들은 이 초대전이 창작의욕을 북돋우는데 기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부문별 우수상 입상작 4점과 심사평을 싣는다.【편집자 주】

한국일보사가 이 시대의 한국미술을 이끌어갈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한 「청년작가초대전」을 어떠한 관점과 수준에서 바라보고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충된 견해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25명의 작가들을 놓고 최종 수상작가를 선별해야 하는 어려움은 그래서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작가들의 다원화한 의식만큼이나 심사의 관점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산란스러울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경우의 「심사」란 결국 작가들의 현란한 의식의 와중을 남김없이 들추어 보고 그 의의를 개별적으로 매겨 보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서 심사위의 시각은 다행히 다음 몇 가지로 집약될 수 있었다. 첫째, 작가들이 각자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어떻게 자신의 총체성을 담고자 했는가. 둘째, 이러한 시도에 있어서 자신의 개별성과 차별성을 보유하려는 의지가 치열했는가. 그리고 셋째, 위의 각항들에 대한 우수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재검증과 전이과정이 있었는가. 이 세 가지는 불완전하지만 이처럼 산란한 시대의 예술활동의 다양성을 왜곡하지 않고 그 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차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30∼40대의 자기형성기의 작가들의 사회적·심리적 제상황을 고려하면서 우리에게 최종선발된 작가와 작품은 대상에 강용면의 「역사원년 95-11」이, 부문별 우수상에 허전의 「다중인간-레디고!!」, 권여현의 「얼굴」, 유인의 「그들의 속성」, 우수희의 「무제 1」등이었다. 마지막까지 남게 된 작가들 대부분이 첫번째와 두번째의 선정기준에서 높이 평가된 반면 세번째 기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 주었다. 차별성이나 개별성에서는 우월하여도 재검증 내지 전이과정이 허약하다는 것은 우리 작가들의 안목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주와 하나의 양식의 변형, 그리고 지나치게 오랜 시간 하나의 패턴과 매너에 매달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사항들을 놓치거나 돌보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으로 기성세대의 자태를 쉽사리 조기에 드러내는 아쉬움을 보였다. 허전(한국화), 권여현(양화), 유인(조각)의 조형어법들은 그들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 문맥에 있어서나 차별성이나 개별성의 확보에 있어서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지만 재검증하고 이를 그 다음 단계로 전이시켜 보이려는 전진적 자세의 부재가 지적돼야만 했다. 그들이 한결같이 다중코드에 의해 자신의 실존적 자화상을 그려 보임으로써 이 시대를 증언한다는 것이 계속 하나의 방식으로, 그것도 거의 매너리즘에 도달하고 있을 만큼 하나의 시공간에 너무나 오래 머물러 왔다는 것은 오늘의 시간적 추이개념에 역행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대상후보는 아직은 천착과정에 있거나 차별성에 있어서 가장 현저한 경우로 낙점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금번 심사위의 과감한 선택이자 심사문화의 새로운 정착을 기도한 것으로까지 생각된다.

강용면의 목조각 「역사원년 95-11」은 얼핏 보아 인상부터가 낯설기 짝이 없다. 작품의 어디에도 완결성이란 보이지 않는다. 투박한 나무의자, 원색으로 채색된 세 사람의 남녀좌상, 무표정하고 재치와 기민성을 상실한 선획들―이 모두는 정통조각어법과 크게 상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충이 그 다음의 설득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우리의 무속의 무표정한 도상학이나 전통의상의 이모저모를 의도적으로 빌려 오늘의 경직된 도시인들의 소시민적 초상을 패러디수법으로 강타해 보였다는 것은 즐겁고 또 신선한 어법의 발견이리라는 평가가 이렇게 해서 대상작가에게 주어졌다.<대표 집필 김복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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