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가려면 서울 거쳐라” 분명한 메시지/경수로 추진과정 이해분쟁 예방 포석도김영삼 대통령은 8일 상오8시 미 클린턴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경수로에 관한 북·미합의문안과 관련한 우리측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다.
북한이 한국형경수로를 사실상 수용하는 단계까지는 왔지만 더 밀어붙일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곧이어 상오10시 나웅배 부총리는 정부발표문을 통해 일본이 북한에 곡물을 먼저 제공할 경우 『한일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수위높은 경고성 메시지를 발했다. 한국쌀 우선의 원칙은 이미 여러차례 발표되거나 외교경로를 통해 전달된 바 있지만 양국정부간 관계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같은 대북정책의 자세를 『한 손에는 경수로, 다른 손에는 쌀을 들고 북한을 서울로 끌어 들이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북한과 교섭중인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북측에 『워싱턴과 도쿄에 가려면 반드시 서울을 경유해야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경수로문제나 쌀문제 모두에서 북한측의 태도는 유연해지고 있다는 게 우리측의 판단이다. 여기서 한발짝만 더 나가면 「한국배제노선」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측은 9일 방한하는 로버트 갈루치미핵대사와 윈스턴 로드국무부동아태담당차관보와의 한미협의에서 남북관계의 현국면에 대한 우리측의 이같은 인식을 설명하고 미국측의 협조를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갈루치 대사와 로드 차관보가 함께 내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측이 제네바합의 이행문제 전반을 이번에 마무리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번 한미협의에서는 경수로문제뿐아니라, 콸라룸푸르회담이후 남북대화의 재개문제, 그리고 연락사무소개설을 비롯한 북·미관계개선의 일정문제등이 폭넓게 논의될 전망이다.
콸라룸푸르의 북·미 준고위급회담이 타결의 큰 고비를 넘겼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우리측으로서는 제네바합의문처럼 모호해서 북한에대한 추가양보가 불가피해진 전철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북·미양측간에는 경수로의 노형과 주계약자선정 문제를 「한반도에너지개발 기구(KEDO)가 선정하는 노형및 계약자」로 표현하기로 구두합의가 돼 있다.한미일등이 합의한 KEDO의 경수로 공급협정초안은 노형을 한국표준형, 참조발전소를 울진3,4호기로 명기하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북한측이 한국형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수용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측으로서는 공급협정체결을 위한 대북협상과정에서 이같은 원칙이 다시 희석될 것을 우려해 보다 명확한 명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측 강경자세의 배경에는 경수로사업 추진과정에서 미국기업등과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이해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고려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북한이 한국형경수로 명기를 수용할 수 없는 「체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으로서도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명분이 요구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유승우 기자>유승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