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 헤쳐간 조선말 예인·민중의 삶/언어·시대묘사 뛰어나 절로 빠져들게 나는 소설을 제법 읽는 편이다. 신문의 연재소설도 열심히 읽어보고 또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들어가 있는 책이면 으레 읽고 싶은 욕심에 이내 책을 사게 된다. 가령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든가 「동의보감」은 물론 「여자의 남자」까지도 읽어왔다. 꼭 특정한 작가의 책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읽고 마음속에 잔영처럼 남아 있는 작가의 책이 소개되면 끝내 읽게 되고 만다.그것이 바로 최근에 읽게 된 김성동의 대하소설 「국수」인데 일찍이 그의 소설 「만다라」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삶의 깊음을 일깨워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둑의 생사는 아직 모르지만 신문의 기보는 그 필자들의 곁소리에 끌려서라도 꼭 읽게 된 것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으니 「국수」라는 제목에서부터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수」는 그냥 소설이 아니다. 표지 안쪽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조선조말 격랑의 역사속에서 몰락의 위기에 놓인 우리의 전통예인들과 민중의 희망 그리고 좌절을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풍속 언어에 대한 섬세한 고증과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보적 문장으로 탁월하게 그린 대하소설』이다.
그렇다고 이것은 단순한 역사소설도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백여년전 우리의 선조들이 힘들여 살았던 그 시대의 구석구석을 핥아가면서 그때의 말과 혼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살아 있는 소설이다.
사실 이 소설을 술술 재미로 읽어 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작가의 숱한 노력으로 다시 찾아 낸 옛 반상어들을 그대로 쓰면서 소설에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각주를 달아 그 뜻을 밝히고 있어서 자연 그 의미를 다시 새기면서 읽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김씨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말의 고고학자처럼 우뚝 서서 우리가 아예 잊어버렸던 언어들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되살아나고 있는 그 말들에서 독자들은 마침내 새로운 지혜를 얻고 뜨거운 흥분을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비록 짧게 살았지만 지금도 그리운 선비 김병윤과 그의 명민한 아들 김석규에 이어지는 몰락한 양반집안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국내외의 다양한 변화와 대응, 여기에 뼈저린 저 아래 가난의 이야기로부터 부패되고 타락한 왕가의 시아버지-며느리의 싸움이야기까지 「국수」는 몇번이고 나에게 어금니를 물게 만들었다.
바둑에서는 「국수」가 생과 사를 평정하는데 우리 민족의 긴 역사에서 21세기를 내다보는 오늘 과연 민족의 삶을 이끌어 갈 「국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민중이 「국수」가 되는 날을 그려보면서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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