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병조약은 우호적으로 이뤄졌다」는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 일본외무장관의 망언은 나라를 강탈한 한일합병의 불법성 자체를 부인했다는 점에서 아주 충격적이다. 역사왜곡의 극치를 보는 것같다. 지금까지 망언이 수없이 되풀이됐지만 어디까지나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결과를 두고 한 말이었다. 한일합병의 강압성을 왜곡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저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세계는 지금 21세기를 앞두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불행한 전쟁이나 식민지배등 과거의 청산을 바탕으로 한 협력이 전제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에서는 종전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승전국과 패전국이 한덩어리가 돼 화해 위에서 쓰라린 과거를 축제로까지 승화시켰다. 독일의 솔직한 반성과 사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은 어떠한가. 세계의 시선이 일본에 쏠려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부정하는등 역사를 거꾸로 가려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무라야마연립정권이 발족할 때 합의한 국회의 부전결의도 자민당과 신진당등의 당리당략과 우익세력의 반발로 침략과 식민지배를 한 나라이름을 숨기는등 알맹이가 전부 빠져나가고 빈껍질만 남을 조짐이 있다. 그나마도 의견조정이 안돼 국회결의 자체가 불투명해진 한심스런 상황이다.
우익세력은 지난 침략전쟁이 아시아의 해방전쟁이었다며 아시아 공생제전이란 해괴한 모임을 갖는등 부전결의를 저지하기 위해 망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터져나온 와타나베의 망언은 마치 한국국민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일본에 바친양 역사를 왜곡, 한국국민 전체를 모욕하고 있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전외무장관의 망언은 「깊은 슬픔」 「통심」 「통석의 염」 「반성」 「진사」로 이어진 일왕이나 역대총리의 식민지배등에 대한 미진한 사과발언이 그나마 입에 바른 소리란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공식적으로는 사과하고 뒤에선 이를 부정하는 일본의 이중성은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아니라 한일협력체제구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일본은 이제 자신에게 솔직하고 겸허해야 한다. 역사를 숨기는 이중적 평화주의로는 국제협력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청산이 없는 평화주의는 위선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일본외무성이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0%가 일본의 전후처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겠는가.
이런 점에서 최근 일본을 방문한 슈미트전독일총리가 「일본의 국회결의에 사죄란 말이 들어간다면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고 한 충고는 일본에 좋은 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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