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염홍철/행정력·신의로 뭉친 “작은거인”/심성곱고 문화예술 남다른 관심나와 염홍철 후보는 대전공업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3년동안 줄곧 같은 반에서 함께 지냈다. 친하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 늘 그의 성적이 앞서 꽤나 공부를 한다했던 나도 그의 앞에서는 별로 빛을 발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회장을 했던 염 후보는 JRC(학생적십자 클럽) 대전지구연합회장도 맡아 폭넓은 교우관계를 갖기도 했다. 고교졸업후 염 후보는 경희대학교 정외과에 서 특대생으로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염후보는 기동창회가 있을때면 성의있게 참석했다. 신의를 그만큼 소중히 여기는 친구였다. 동기중 스승의 날을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런가하면 연세대에서 석사,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교환교수로 유학을 가는 일들을 혼자힘으로 해내 인간의지의 값진 교훈도 보여줬다. 이렇듯 그의 인생역정은 보다 넓고, 보다 높은 이상향을 현실화시키면서 힘차게 뻗어간 「소수인생론」의 산 증인이나 다를 바 없다.
염 후보가 대전광역시장으로 부임했을때 두가지 화제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교수출신이 제대로 행정을 하겠느냐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점이다. 그는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냄으로써 대전발전을 10년정도 앞당기는 쾌거를 이뤘다. 또 결재받으러 와서 부동자세로 서있는 부하직원에게 자리에 앉아대화를 나누며 결재를 받도록 해 신선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염 후보는 정에 약하다. 심성이 그만큼 고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당찬 리더십과는 대조되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장애인이나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래서인지 애창곡도 「사랑으로」이다.
그는 유독 음악을 좋아한다. 그의 집무실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도록 오디오를 켜놓는 것을 몇번 보기도 했다. 존경하는 인물이 다른 사람아닌 베토벤이란 점도 우연은 아닐줄 안다. 문화예술진흥에 남다른 감각과 지원을 아끼지않는 일은 대전의 예술인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염 후보는 당당하게 말한다. 소수인생론에서 보여주듯이 대전을 21세기 최고의 도시, 삶의 질이 최고인 대전을 만들겠다고. 나는 결코 그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님을 믿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증명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작은 거인」이라 부른다.<오원균 51·중경공전 부학장>오원균>
▲충남대 공대 ▲한양대 대학원(공박) ★후보와의 관계=대전공고동기동창
◎나는 이런 방법을 통해 승리하겠다/“있는대로 보여주고 평가 받을터”/민자당 염홍철
나는 특별한 선거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대로 보여주고 평가를 받으려 한다. 우선 다른 후보들을 경쟁관계로 보지않는다. 지난 2년간의 시장재임에서 보여준 시정수행능력을 우리 시민이 어떻게 평가해주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러 여론결과에 따르면 나의 시정수행능력이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승산이 있다고 본다. 특히 여성, 젊은층, 지식인층의 지지가 높게 나타나 고무적이다. 젊은층이 대거 투표에 참가, 투표율이 높아지면 유효투표의 35∼40%을 얻어 압승할 자신이 있다. 홍선기 후보가 자영업을 하는 40∼50대의 중년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JP바람」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바람의 실체를 한번 경험한 일이 있는 대전시민의 경우 예전과 같지않을 것이라는 중론에도 귀를 기울인다.
다만 진인사대천명 자세로 끝까지 공정선거의 룰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겠다.
□약력
▲충남 논산·51세
▲경희대 정외과(정박)
▲경남대교수·청와대 비서관
▲대전시장
◎민주당 변평섭/강한 정의감·신념갖춘 “돌부처”/30년 언론생활 묵묵히 직필고수
변평섭. 그의 첫 인상은 불상을 연상시킨다. 온갖 풍상을 노천의 바위처럼 묵묵히, 그러나 꿋꿋이 맞받아온 그런 돌부처말이다. 그의 얼굴을 보면 언론인으로서의 30여년간 그가 보고 겪었던 이 나라의 사회현상이 그의 가슴속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 것인가를 약간은 짐작할수 있다.
영광과 오욕, 좌절과 새 희망으로 연속되어진 그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몇가지 회상의 편린을 더듬어 그를 얘기하고자 한다. 약관 25세에 대전지역 언론사인 대전일보사에 입사해 나름의 신념과 젊은 패기를 펼치던 그가 부딪친 첫번째 도전과 시련은 10대 국회에 진출코자할 때였다.
그는 당시 모처에 불려가 갖은 고초를 당할때 물리적인 압박보다도 처절하리만치 인간을 비하시키는 정신적 강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상황속에서 그나마 버텨낼수 있었던 것은 「작은 신앙」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용서하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음을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변후보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간혹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빠른 시간안에 그것을 해소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상처를 많이 받아본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동병상린이랄까.
그에게 어려웠던 시절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재직하던 대전일보사에서 최초의 직선 편집국장으로 피선됐을때, 서울언론인클럽에서 주는 「칼럼부문 언론대상」을 수상했을때 그는 진정으로 기뻐했다. 특히 서슬퍼렇던 군사정권하에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러 언론인 스스로가 제정한 상을 받은 것을 그는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그후 그가 다니던 신문사의 사주와 사원이 서로 상반된 입장과 견해를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했을때 그는 어느때보다도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결국 선택의 갈림길에서 펜을 잡고 발로 뛰는 것을 천직으로 여겼던 그로서는 사원쪽의 길을 택할수밖에 없었다. 사주와의 오랜 친분때문에 고뇌에 빠지지않을수 없었으나 결국 자신을 편집국장으로 뽑아준 기자들 편에 선뒤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당시 그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다. 신앙의 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평화로움 속에서 나는 그의 강한 의지를 발견할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외유내강」이란 말이 바로 인간 변평섭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어휘라고 생각한다. 그의 정의감과 시민에 대한 사랑이 이제 어떻게 승화될지 기대가 무척 크다.<김병욱 55·충남대 국문과교수>김병욱>
▲서강대 국문학과 ▲민교협충남지회장 ★후보와의 관계=지인
◎나는 이런 방법을 통해 승리하겠다/“새인물 갈망 시민욕구 파고들것”
민심은 민자당을 떠났고 JP바람도 「반YS」의 바람일 뿐이다. 많은 시민은 그동안 중앙집권시대의 임명직시장이 펼쳐왔던 땜질식 행정에 실망을 느끼고 있다. 이런 실망감과 정치적 소외감때문에 시민은 진정 대전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 새로운 인물을 희구하고 있다.
나는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대학교 대학원은 물론 직장생활 30여년까지도 대전에서 보낸 「대전의 아들」이다. 또 선거운동조직은 여당에 비해 약할지 모르나 그동안 대전의 개혁세력과 함께 많은 양심운동에 참여했던 탓에 진실로 대전을 사랑하는 여러 계층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전사범및 충남대 동문, 나를 키워주고 내가 사랑하는 언론계 동료, 내가 참여했던 많은 시민단체가 나의 든든한 힘이 돼주리라 확신한다.
80만표중 28만표가 당선권이라고 추산할때 고정야당표 20%와 개인적 지지표, 동문표와 주요 지지층인 20∼30대층, 그리고 상승분위기를 타고 있는 주부층 지지가 모아진다면 당선에 근접하리라 본다.
□약력
▲충북 영동·55세
▲충남대 영문과
▲대전일보 편집국장
▲중도일보주필겸 상무
◎자민련 홍선기/경영마인드 물씬 “전천후 일꾼”/공직생활중 26년을 대전과 함께
내 친구들중 홍선기 후보처럼 일처리를 꼼꼼하게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가 홍후보를 알게 된 것은 신탄진에서 태어난 내가 대전고에 진학했을 때이다. 그때부터 40여년간을 홍후보는 늘 나에게 고향소식을 알려준 정다운 친구이다. 그는 증조부와 조부가 진잠향교의 전교를 역임한 유가의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엄격한 가풍속에서 자라서인지 언제나 예의바르고 사려깊었으며 정직했고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를 「도안동 선비」라고 부른다. 문학과 예술을 좋아했던 그는 천재화가 이중섭, 작가 김동리, 시인 서정주의 작품에 관해 토론하곤 했는데 깊은 조예와 열성적인 태도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홍후보는 내가 미국유학을 떠나기 1년전인 60년12월, 공무원채용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중 26년을 고향인 대전에서 보내 지역 실무행정에 관한한 박사학위를 주어도 부족한 친구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그가 도청 지방과장으로 있을 때 충남지사가 전신주와 전신주사이의 길이를 물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도지사는 『홍과장이 모르는 것도 있군』이라며 농담을 던진 것은 지금도 지역공직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홍후보는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시장재직시 미국 교민사회에도 「엑스포를 준비한 시장」으로 알려질만큼 대전엑스포의 실질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 2천년대를 내다본 지하철계획을 수립했고 서남부권 개발계획을 입안했으며 대전광역시 중장기계획을 세우는등 열성파 시장이었다. 홍후보는 국제화시대의 경영마인드도 아울러 갖춘 전천후 일꾼이다. 「한밭개발공사」를 설립하는등 지방에서는 최초로 선진방식의 「제3섹터」개념을 도입, 지자체의 경영사업을 시도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하직원과 민원인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겸손한 민주주의자였다. 이런 탁월한 시정활동으로 그는 퇴직후 모월간지 여론조사에서 「최고의 시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선진 지방자치의 모델이 되는 미국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내가 봐도 가장 훌륭한 대전시장감이라고 확신한다. 넉넉한 마음씨에 정이 많았던 친구, 능력과 경륜에서 배어나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만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가 출마한다니 더 없이 반가운 일이다. 한달후 그가 시장에 당선돼 고향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김창준 59·미국 연방하원의원>김창준>
▲캘리포니아주립대 ▲다이아몬드바시장 ★후보와의 관계=고교동문
◎나는 이런 방법을 통해 승리하겠다/“정치성없는 애향심 내세워 승부”
그동안 김영삼대통령과 민자당의 사탕발림식 헛공약에 속았던 시민의 자각이 나의 최대무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전고 인맥의 광범위한 지지, 여론주도층인 40∼50대의 호응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당선된다면 당선된 날부터 「하루의 연습」 없이 대전의 발전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풍부한 노하우가 있다는 점이 유권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또 30여년의 공직생활을 청백리로 일관했으며 지방행정에만 몸담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것, 애향심이 충만하지만 정치적 야심이 없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유권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다른 후보는 행정경험이 전혀 없거나 일천한 상태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바람직한 단체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행정능력으로 지적됐었다.
야당후보인만큼 조직과 선거자금의 여유는 많지않지만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자원봉사자를 최대한 활용하겠다. 대전시민의 애향심과 현명한 선택으로 50%이상, 40만표이상을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약력
▲대전·59세
▲중앙대 경제학과
▲정무1장관실 정무실장
▲대전시장·충남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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